효녀 지은 설화                             - 삼국사기 권48-

    본 문

효녀 지은(知恩)은 신라 한기부(신라의 서울, 경주의 행정 구역인 육부의 하나)에 사는 연권이라는 사람의 딸이다. 그는 나면서 성품이 매우 효성스러웠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몸이 된 어머니를 봉양하면서 나이 서른 두 살이 넘었는데도 오히려 시집을 가지 않고 밤낮으로 어머니 곁을 떠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집안의 형세는 자꾸만 가난해 갔기 때문에 어머니를 마음껏 봉양할 수 없었다. 날품팔이로 남의 일을 거들기도 하고 때로는 이집 저집 찾아다니며 밥을 빌어다가 겨우 어머니를 봉양할 수 있었다. 지은은 끝끝내 그 참담한 빈궁을 견디다 못해 마침내는 어느 부잣집을 찾아가 몸을 팔아 그 집 종노릇을 하고 그 값으로 쌀 십여 석을 얻기로 하였다.

그로부터 효녀 지은은 그 부잣집에서 종일토록 일을 해주고 날이 저물어서야 집으로 돌아와 밥을 짓고 어머니를 봉양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기를 사나흘이 지난 어느날 어머니는 딸에게 느닷없는 푸념을 늘어 놓았다.

" 얘야, 지난 날에는 빌어온 밥이라도 그 맛이 달더니 요사이는 웬일인지 밥은 좋으나 전처럼 밥이 달지가 않구나. 오히려 밥을 먹으면 칼로 간장을 찌르는 것 같으니 웬일인지 그 영문을 알 수가 없구나. "

어머니의 이 말을 들은 지은은 흐느끼면서 사실대로 말씀을 사뢰었다. 딸의 이야기를 듣고 난 어머니는,

" 나 때문에 네가 남의 종이 되다니 차라리 내가 빨리 죽지 못한 것이 원망스럽구나. "

하며 소리를 내어 크게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지은도 목을 부여안고 함께 울음을 터뜨려 온 집안이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그 집 앞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울음 소리를 듣고 슬픈 사연을 알게 되었다. 그 때 마침 효종랑이라는 화랑이 나와 놀다가 그 사연을 알게 되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서 부모님께 지은의 딱한 사정을 말하여 조 백 섬과 의복을 내어주고 한편 지은을 종으로 산 주인에게 쌀 열 섬을 갚아 주어 양민이 되게 해주었다. 이를 본 낭도 몇 천 명도 제각기 조 한 섬씩을 거두어 지은의 집으로 보내주었다.

이 소문이 궁중으로 전해지니 왕도 벼 오백 석과 집 한 채를 내리고 정역(조세와 부역)하는 의무를 면제시켜 주었다. 뿐만 아니라 갑작스레 곡물이 많아졌기로 나쁜 도적이 침범할 것을 염려하여 유사(관청의 사무를 맡아 보는 직무)에게 명하여 군대를 보내어 교대로 그 집을 지켜 주도록 하였다. 그리고 효녀 지은의 효행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 마을 이름을 효양방이라 부르도록 하였다. 

효종랑은 재상의 아들로, 어릴 때의 이름을 화달(化達)이라고 하였는데, 대왕이 이르시기를

"효종랑은 아직 나이 어리나 어른스럽게 보인다." 하시고, 곧 그 형인 헌강왕의 딸로써 효종랑의 아내를 삼게 하시었다.

    작품 정리

해설

이 이야기는 <삼국사기> 열전에 전하는 신라의 민간 설화이다. 주인공 지은(智恩)이 연권(連權)의 딸이었기 때문에 [연권녀 이야기]라고도 한다. <삼국유사>에는 [빈녀 양모(貧女養母)]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는데 내용상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구전 설화가 문헌 설화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생긴 유동성이라고 본다.

이 설화는 후에 [심청전]의 근원이 되는 설화로서 그 주제가 효(孝)이고, 또한 그 구조에 있어서도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거의 동일한 면을 보이고 있다. 근원 설화가 판소리로 발전하고, 여기서 다시 판소리계의 고대 소설로 형성되어 가는 발전 과정에 비추어 보아서도, [효녀 지은]의 설화가 [심청전]의 판소리나 고대 소설의 대본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우리 나라에서 많은 설화가 효에 주제를 두고 이야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나타난 것처럼 헌신의 효가 가장 큰 효도로 평가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물질과 마음의 효, 즉 공양과 봉양의 효가 마찰을 일으키는 구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효녀 지은]이나 [심청전]이 그 예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한편, 효녀 지은의 설화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묶여져 있다는 것이다. 이 설화는 효녀 지은의 설화이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화랑인 효종랑(孝宗郞)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신라 사회에서 화랑의 사회적인 역할과 선행을 강조하기 위한 이야기로서, 이렇게 보면 효녀 지은의 설화는 부대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효에 관한 설화는 일정한 양식이 있다. 우리 나라의 효행설화는 대체로 희생효설화(犧牲孝說話)가 많은데, 희생효설화는 다시 효녀 자기 희생형, 산삼동자형, 효자 매아형 등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렇게 자기 혹은 자식을 희생시키는 것은 효지상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그 중 [효녀 지은]은 자기 희생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설화들은 보통 "효녀가 자기의 몸을 희생하니 기적이 일어나 효도가 되었다"로 간추릴 수 있다.  [효녀 지은]에서 자기의 몸을 희생한다는 것은 남의 종이 되었다는 것이요, 기적이라는 것은 귀족인 '효종랑'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끝 부분에 왕이 효종랑의 인품을 칭찬하는 내용이 덧붙어 있는데, 이것은 백성들의 동정을 잘 살폈다는 의미에서 칭찬한 것이어서, 사찰 연기 설화가 덧붙어 있는 '손순 매아'와 다른 점이다. 이는 '손순 매아'의 기록자인 일연과, '효녀 지은'의 기록자인 김부식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기록했기 때문일 것이다.

 

요점정리

⑴ 종류 : 민간 설화 (효행설화), 민담, 인신공희설화

⑵ 성격 : 교훈적

⑶ 주제 : 지은의 효행

⑷ 의의 : 고대 소설 [심청전]의 근원 설화가 됨.

⑸ 출전 : <삼국사기> 권 48, 열전

 

◆ 인신공희를 통한 효행설화의 일반적 구조

인신공희형 효행설화는 '효자(효녀)가 부모를 정성을 다해 봉양함 ⇒ 가장 중요한 것(자기 신체의 일부, 자신의 목숨 등)을 희생함 ⇒ 기적적인 일이 일어남 ⇒ 부모에게 효도하며 행복한 결말에 이름'의 단계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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