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의 처 이야기                         - 삼국사기 권 48.-

    본 문

백제 제4대 개루왕 때에, 의리를 아는 사나이로서 도미(都彌)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때 백제 성하(城下)에 도미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에 대한 소문도 자자하게 나 있었다. 아내는 그 용모가 천하에 일색일 뿐만 아니라, 절행(節行) 또한 방정하여서 칭찬 아니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 때, 개루왕이 도미의 아내가 정절하다는 소문을 듣고서, 도미를 불러서 물었다.

" 부인의 덕(德)은 정절이 첫째라고 하지만, 제 아무리 정조를 중히 지키는 자라 할지라도, 캄캄하고 인적이 없는 곳에서 달콤한 말로 꾀이면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자가 없으리라. "

그 말에 도미는 " 한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 하왔으나 소신의 아내만은 설혹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딴 뜻을 품을 리가 없을 것이옵니다. "

왕은 도미의 말을 듣고서 과연 그럴까, 그토록 품행이 방정하단 말인가 생각하며 사실 여부를 시험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도미에게 구실을 붙여서 머물 게 하였다. 도미를 붙잡은 왕은 곧 근신(近臣)에게 왕을 가장시키었다. 왕의 의관을 입히고 관을 씌워서 말을 태워 도미의 집으로 보내었다. 이 가짜 왕은 도미의 집에 이르러서 곧 사신을 시켜 도미의 아내에게 왕이 행차하였다고 알리었다. 그런 후 밤에 가짜 왕은 곧 도미의 부인에게,

" 짐이 너의 소문을 귀에 듣고 은근히 흠모한 지 오래이었는데, 마침 그 뜻이 이루어졌다. 짐이 도미와 내기를 하여 이겼느니라. 그래서 너를 궁인(宮人)으로 얻게 되었으니 이제 너의 몸은 내것이다. "

하고 곧 부인을 범하려 대들었다. 그런데 정절이 굳다던 도미 부인은 뜻밖에도 자기의 몸을 지키려 하기는커녕,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 상감마마께서 어찌 헛된 말을 하오리까. 그러하오니 내 어찌 상감마마의 뜻에 쫓지 아니하겠나이까. 그러하오니 방에 듭시어서 기다려 주옵소서. 소첩은 옷을 갈아입고 모시러 들겠나이다. "

가짜 왕이 그녀의 뜻을 허락하자 도미의 아내는 물러나와서 곧 계집종을 불렀다.

" 나는 지아비가 있는 몸이니 네가 나를 대신하여 모시어라. "

하고는 곱게 단장시켜서 가짜 왕의 방으로 들여보내었다. 이 소문이 나중에 퍼지고야 말았다. 왕은 그 소문을 괘씸히 생각하였다.  아무리 자기가 아니라 가짜 왕이라 할망정, 도미의 아내는 가짜 왕인 줄 알지 못하였을 터이니 감히 자기를 속인 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노한 나머지 도미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서 벌을 내리었다. 그 벌이라는 것이 또한 흉칙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도미의 두 눈을 빼 버린 것이었다. 생 소경을 만든 것뿐이 아니었다. 부하를 시켜서 그를 조그만 배에 실어서 강물에 띄워 보낸 것이었다. 눈으로 보지도 못하면서 도미는 물결치는 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상감께서는 도미를 그렇게 무참하게 벌주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으시었다.  <제가 얼마나 도도한 계집이길래 어디까지 절행을 지키나 보자.> 하고 생각하시고 도미의 아내까지 궁중으로 끌어들이었다. 상감은 아리따운 도미의 부인을 강제로 범하려 하였다. 그러나 꾀가 많은 도미의 부인은 여기에서도 또 한 꾀를 자아내어서 그 위기를 면하였던 것이었다.

"소첩은 이미 지아비를 잃고 홀몸이 된 신세입니다. 홀로 살아가기가 힘들게 된 터이온데, 상감마마를 모시게 되어 어찌 기쁘지 않겠나이까. 어이 상감마마의 영을 어기겠사옵니까. 허나, 지금 소첩의 몸에 다달이 오는 불순이 있는지라, 온몸이 더럽사오니 바라옵건대 후일 깨끗이 몸을 씻은 다음 모시겠나이다."

도미의 아내가 진실인 듯 사뢰는 이 말을 대왕은 곧이곧대로 들으시었다. 도미 부인은 이러한 핑계로써 상감의 앞을 빠져나와 강가까지 도망쳐 나왔다. 그러나 강에 배가 없어서 그 강을 건너지 못하고, 그저 하늘만 우러러보면서 통곡하는데 돌연 조각배 하나가 나타나서 물결에 흔들리며 떠 왔다. 도미 부인은 앞뒤를 가릴 것 없이, 그 배를 잡아타고 곧 배가 떠가는 대로 몸을 맡기었다.

그 배는 천성도(泉城島)라는 섬에 이르렀다. 뜻밖에 도미의 아내가 탄 배가 그곳에 닿자, 도미가 천성도에 있었다. 도미는 그때까지 죽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만나서 울며불며 반가워하였다. 그리고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끼니를 이으면서 살아갔다. 그러다가 이윽고 둘이 함께 배를 타고 고구려 땅으로 갔다. 고구려 백성들은 두 사람의 가련한 얘기를 듣고서 곧 의식(衣食)을 대주어 살게 하였다. 도미는 비록 눈을 잃었을망정, 아내를 만나 그곳에서 행복하게 일생을 살았다.

    작품 정리

해설

도미 설화는 여자가 남편을 위하여 정절을 지킨 것을 내용으로 한 열녀 설화이다. 후대에 열녀를 제재로 한 무수한 설화의 한 원형을 이룬다. 이 설화의 특징은 설화의 등장 인물인 도미 부부와 개루왕의 성격이 당시의 사회적 사정을 반영하고 있고, 서민이 권력의 침해를 받는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흔히 흥미 위주로 서술되는 설화에서 이와 같은 양상은 매우 드문 경우에 속한다.

 이처럼 이 설화는 열녀의 절개를 강조할 뿐만 아니라 민중의 건강한 삶의 윤리와 이를 침노하는 권력의 횡포를 대비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대 설화로서 특이한 성격을 지닌다. 열녀설화는 주인공의 정절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장애가 있어야 하고, 그 장애를 극복하거나 극복하지 못하는 과정이 흥미를 끌어야 하는데 이 설화에서는 당대의 사회가 지닌 핵심적 모순을 그 장애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한 의의를 지닌다.

'도미설화' 는 열녀설화(烈女說話)에 속하는 점에서는 매우 보편적이고 유형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구성하는 요소 중 반동 인물로 작용하는 인물이 왕(王)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른 설화들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열(烈)은 충(忠)과 더불어 사회를 유지시키는 근본 윤리 중의 하나인데, 그 윤리를 국가의 수장(首長)이 부정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는 설화의 세계가 추구하는 가치관을 좀더 강화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즉 열(烈)을 왕이라는 절대 권력에 대항해서라도 지켜야 하고 또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서 의미 부여를 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런 과정에서 극적인 긴장감과 재미도 부수적으로 얻게 된다.

 

요점정리

1. 성격 : 설화(민담), 열녀 설화(烈女說話), 관탈민녀설화.

2. 표현 : 역어체, 산문체

3. 내용 : 포악한 왕의 유혹과 탄압에도 부부의 의를 지킨 도미의 비극적인 이야기

4. 주제 : 도미 아내의 정절(여성의 정절 의식), 또는 지배 계층의 횡포 폭로

5. 의의

① 열녀 설화의 원형이다. <춘향전>의 근원설화

② 민중의 긍정적인 인간관을 보여주는 설화이다.

6. 출전 :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

 

도미설화의 전승 및 관련 작품들

<도미설화>는 『삼국사기』와 『오륜 행실도』에 실려 있는데, 유교적인 윤리관(烈)에 바탕을 둔 귀감으로서 널리 전승된 듯하다. 이 설화는 <청화담>5권에 삽화로 실려 있으며, 박종화의 현대소설 <아랑의 정조>의 모본이 되기도 했다. 아울러 고대소설 <춘향전> 역시 이러한 설화적 모티프를 차용하여 소설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도미설화>와 유사한 구전설화로 <우렁이 각시>와 제주도 <산방덕 전설>을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특히 <우렁이 각시>는 <도미설화>와 비교해 볼 때, 고발적 성격이 매우 강하고 현실성이 강한 이야기라 하겠다. <우렁이 각시>의 경우, 남편이 죽어 새가 되고 관리의 아내가 된 우렁이 각시를 보고 부르는 노래(원통새의 노래)도 전승, 채록되었다.

    생각해 보기

참고자료 : <아랑의 정조>에 대하여

 박종화(鐘朴和, 1901∼1981)가 (문장)(1940.12)에 발표한 단편소설. 이야기의 줄거리가 '도미 설화'와 다른 점은 극적인 흥미와 사건의 필연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좀더 상술되어 있다는 점인데, 도미는 목수로서 대궐 공사를 잘못했다는 구실로 장님이 되어 쫓겨나게 된다. 박종화는 단지 도미의 아내에게 '아랑'이라는 이름을 주어 성격화하고 있다. 이렇게 전승되는 이야기 구조를 따라가는 것은 박종화가 지은 역사소설의 특징이다. 박종화는 창조성의 발현에는 인색했지만, 설화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 인물의 세세한 심리를, '아랑은 싸늘하게 노했다. 달빛 속에 새촘히 돌아서는 아랑의 뒷태도는 부어내리는 서릿발 보다 더 차갑다, ' 와 같은 구절을 통해 보여 주려 할 뿐이다. 그러나 이때의 인물들은 설화에서의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희 평면적이다. 제목에서 주체가 설화와 달리 도미 처(아랑)로 되어 있음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참고자료 : 개루왕과 도미의 여성관

 도미 설화에서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개루왕과 도미의 여성관이다. 개루왕은 여성의 정조란 믿을수 없다는 견해이다. '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자가 적다' 라는 말은 거의 없다는 뜻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여성 부정의 태도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도미는 그렇지 않다. '사람의 심리란 측량하기 어렵다' 고 약간 회의를 가지고 있으나 자기 아내의 경우는 철저히 신임하고 있다. 이것은 도미의 인간 긍정의 건실한 태도를 보여 주는 것이다.                                                                                                  

- 장덕순, <한국 설화 문학 연구>에서

설화의 유형 분류

<도미설화>는 관탈 민녀 설화 또는 열녀 설화로 분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관탈 민녀 설화'란 지배 권력을 가진 관리가 민간 여자의 정절을 빼앗으려는 이야기를 말한다. 이 설화를 관탈 민녀 설화로 분류하는 것은 주인공인 도미 부부는 신분이 낮은 백성이고, 반동 인물인 개루왕은 권력의 최상층에 위치한 신분이라는 점에 초점을 둔 것이다. 백제왕으로 대표되는 관(官)과 도미 부부로 대표되는 민(民)과의 대립상을 이 민담의 핵심적 구조라고 보는 것이다. 반면에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 간의 대립상보다는 계속되는 시련과 위압을 도미의 아내가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두었을 때 이 설화는 열녀 설화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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