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장수 설화

   내 용

◆ 아기 장수

옛날 영월군 수주면 도원리 손씨 집안에 남자 아이가 태어났는데, 갓난아이답지 않게 골격이 크고 당당하였으며, 겨드랑이에는 날개(새로운 세계 지향의 가능성 상징)가 돋았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 3일이 지났을 때, 저 혼자 걸어다니는 것은 물론, 방 안의 선반 위에 올라가는 등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손씨 부부는 남자 아이가 태어나 기쁘기 한량이 없었지만,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여보, 아무래도 예사 아이가 아니예요. 우리같이 미천한 집안에 저런 아이가 태어나다니 어쩌면 좋아요?"

"글세, 가뜩이나 나라 안이 어수선한데, 만약 우리 집안에 저런 장수가 태어난 걸 알면 관가에서 경을 칠 것이오."

집안 식구들은 어쩔 줄 몰랐다. 그러는 사이에 이 소문이 마을에 퍼졌다. 마을의 지각 있는 노인들도 모두 근심스런 표정으로,

"그렇지 않아도, 장수가 태어나 나라를 뒤집으려 한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장수 아기를 출산했으니 손씨 집에 앞으로 닥칠 일이 걱정되는군."

하며 수군거렸다.

손씨 집안에서는 눈물을 머금고 그 아이를 없애 버렸다. 아기 장수가 역도(逆徒)가 되어 멸문지화를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지 3일 후에 그 마을 동쪽의 후미진 곳에 있는 깊은 소(沼)에서 우렁차게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모두 아기 장수를 태울 용마가 났다고 말하였다.

그 용마는 아기 장수를 찾아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하지만 아기장수는 이미 죽었으니 어찌하랴. 결국 용마는 주인을 찾지 못하고, 수주면 무릉리 동북쪽 강 건너 마을의 벼랑에서 슬프게 울부짖다가 나왔던 곳으로 되돌아와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용마가 나왔던 소를 용소라 하며, 그 옆에 용마의 무덤까지 있다고 한다. 또 무릉리의 강 건너 마을은 용마가 울부짖은 곳이라 하여 명마동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지도에도 그렇게 표기되어 있다.

 

◆ 말구멍의 아기장수

    충남 보령군 웅청면 독산리 뒷바닷가에는 두쪽으로 쪼개져 있는 둥근 큰 바위가 있다. 그 옆에 약 500미터 떨어진 곳에 동굴이 있는데 끝이 나지 않는 긴 굴로 되어 있다.

    예전에 한 노파가 바닷가에를 다녀오는데 동굴 안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났다. 그래서 그 속을 들여다보니 한 마리의 말이 울고 있다가 놀파의 인기척을 알아차리고 동굴 속으로 깊숙이 도망갔다. 한데 이상한 것은 그 후 동굴 근처에 있는 둥근 돌이 하루하루 자라나는 것이다. 처음에는 물 속에 잠겨 있더니 차차 커져서 물위로 나오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동내에 퍼지고 관가에까지 알려졌는데, 당시 고을 원님은 마음이 좋지 못한 사람이라서 이 돌이 큰 장군이 태여날 징조라는 걸 예감하고서 빨리 깨버리라고 명령했다. 그래 깨보았더니 그 속에서 날개가 나 있는 한 아기가 나왔다. 마지막 깃이 나지 않아 날지 못하는 아기를 원님은 죽여버리도록 명령했다. 그 아기가 죽은 후 동굴 속에서 말이 뛰어나와서 발광을 하다가 돌에 머리를 부딪쳐 죽었다. 이 말은 하늘에서 내려온 말이었는데 장차 나라를 다스릴 아기가 죽어버리자 자기도 따라 죽었던 것이다. 그후부터 이 동굴을 말구멍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 동굴은 가장 높은 산위의 구멍과 통하고 있기 때문에 하늘의 말이 자랄 수 있었다고 한다.

 

◆ 서울 용마봉(龍馬峰) 이야기

    옛날에 저기 서울 워커힐 옆 아차산 최고봉우리가 용마봉입니다.

    옛날에 거기서 용마가 나왔다고 해요. 이조시대 그 이전 이야기지요. 여기 한강 광나루는 원래 백제 고구려 경계였지요. 백제성이 있을 때인가.

 옛날에는 장사가 났다고 하면 다 잡아 죽이던 시절인데, 장사가 났다니까 여기 어디서 난 사람이겠지요.

    여기 산밑에 살던 어른이 한번은 아이를 나서 보니까설랑은 사내아인데, 인제 첫국밥을 해서 먹여놓고 잠깐 나갔다가 오니까, 아이가 갓난애가 온데간 데가 없더란 말입니다. 아이가 어디갔을까 참 이상하다- 하고 어머니가 혼자 두런두런 하고 방을 둘러보니까는 방안 선반에 어린애가 올라가서, 무슨 수로 올라갔는지 올라가서 놀고 있더란 말입니다. 참 이상하지요. 보니까는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렸더래요. 그래서 남편을 불러서,

    "애가 날아서 선반에 올라갔으니 이거 어쩐다지요?"

 그러니 남편이랑 하는 소리가,

    "이 애는 우리 집이 망할 징조요, 역적이 나면 죽을 것이니."

    그리고 부부가 의논을 한 끝에 죽이자고 결판을 보고, 그 어린것을 볏섬이라나 멧돌로다가 찍어눌러서 죽였다는 겁니다.

    이렇게 부모가 장사를 찍어 죽이고 나니, 아, 용마봉에서 용마가 나와 갖고 날라 갔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고 그럽니다. 애석한 일이지요.

 [*崔春鳳(男. 47)씨가 서울 동대문구 면목동 北村1265번지의 깊은 사랑(움집, 면목동과 아차산 주위인 교문리 아치리 망우리에 1960년대까지 볼 수 있었던 名物사랑방으로, 10-20평 넓이로 땅을 파서 사랑방을 만들면 훈훈하고 놀기 좋았다)에서 1968. 2. 6 밤 6시 반, 10여명의 노인들과 같이 있으며 구술하였다. 여기 면목동에서 자라면서 10살 안팎에 동네 어른에게서 들었다고 한다.*]

 

◆ 우투리 전설

태조 대왕이 어떻게 됐다던가 그거나 내가 한 이야기 한마디 하지. [조사자 : 네 좋습니다.]  그것을 그 사람들이 해 주더라면서? [조사자 : 네, 충청도 계룡산이라고 하던가요?] 아니 운봉 연재(女院)라. [조사자 : 다른 신은 다 남자 산신인데 지리산만 여산신이라면서요?] 산신령? 산신령이 지리산은 여산신령님이여. 다른 데는 전부 남자신이여, 지리산 밑에는 전부 거시기를 안해 줘. 보화(寶貨)를 안 뵈 주는 거여, 산신령도 여자여. 욕심이 많아. 산신령이 여자 산신령이라. 그런개 지리산 밑에 보화가 잘 안나. 그 7개군이나 된디도. [조사자 : 그러니까 그 왕이 정씨왕이래요?] 아냐, 이태조지. 이태조가 오백 년, 도읍하기 전에, 그래갖고 오백년을 살아 먹었지 않았어? [조사자 : 그러니까 고려시대 때 이야기네요?] 그렇지. 이태조가 이성계거든. 이태조 밑에 난리를 친 사람은 최경 장군이고, [조사자 : 최경 장군이요?] 응, 최경 장군 [조사자 : 그 비문을 보면 아지발도를 이성계하고 어떤 장군하고 둘이 싸웠다데요?] 아 그건 황산(荒山) 이야기고, [조사자 : 그 연관이 있을 것 아니요?] 아니, 그 연관이 아니지.

그 이야기나 내가 해 주지.

그런개 이성계가 말하자면 왕이 안 됐을 때라. 그래 최경 장군허고 이성계하고 연재를 올라서 연재우에 운봉 권포 뒤에 가면 고남산(古南山)이라고 산제, 산제당이 있어. 산제당이 있당개. 산제 지낸 산제당이 있어. 거기를 산제를 모시러 갔어, 최경 장군하고 이성계하고 인자 당신이 왕을 살아먹을라고.

그런디 인자아 산제를 지내러 간 줄도 모른디, 연재에 둥구나무가 한 서 아름이나 돌아간 놈이, 그 운봉 연재 몬당에가 섰었어, 섰는디 그 오늘같이 쏘나기가 떨어졌단 말이여. 비가 떨어졌는디, 인자 그 비를 쫓겨가다가 소금장사가 소금을 짊어지고 단지를 둘러메고 가다가 비를 피해서 둥구나무 쪽으로 들어간 거여. 둥구나무 속으로 들어가서 비를 개고 있는 도중에 저물어 버렸거든. 그래 그 안에 인제 있응개 소금 장사는 아무 짬(내용)도 모르고 있는 것이제. 있는디,

"아무거시 목신(木神) 아무것이 목신" 그 건네서 불러. 그런개 그 나무가 대답을 해.

"어-"하고 대답을 한개.

"오늘 저녁에 이성계하고 최경 장군하고 고남산 산제당터에서 산제를 팔도 산신령님네를 모시고, 말하자면 빌고 할라고 산제를 모시러 간다니 우리 방청을 가세. 우리 구경을 가세."

그런개,

"나는 여기 손님이 와서 못 가겠네."

허고 그 목신이 그런개, "그런다"하고 가서, 밤중에게 제(祭)하고 나서, 또 그 건너에 와서 불러.

"아무것이 목신! 아무것이 목신!"

한개, 대답을 한개,

"오늘 저녁에 팔도 산신령님에가 다 뫼였는디(모였는데), 부정이, 음식에가 부정이 들어갔어. 부정이 쳐 갖고 음식이 더럽단 말이여. 그래 산신령님네가 말하자면 운감(殞感 : 제사음식을 귀신이 먼저 맛봄. 흠향)을 안 하시고 전부 헤어져서 가서 운 일(운을 낸 일)이 없고 그랬네."

그런 이야기를 해. 그래 그 소금장사가 운봉쪽으로 지게를 지고 내려오니까, 최경 장군하고 이성계하고 내려온단 말이여. 그래,

"당신들이 말하자면 산제를 모시고 온 이들이냐?"고 그런개,

"아, 그렇다. 어찌 아냐?"

그런개, 다 드런 이야기를 했어.

"엊저녁에 그 연재 둥구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고 소금짐을 짊어지고 가는디, 말하자면 목신(木神)을 불러가지고 구경을 가자고, 태조대왕하고, 아차차(아니), 이성계하고 최경 장군하고 산제를 지내러 간다니 팔도산신령님 네가 어떻게 일을 하는고, 허급(許給, 달라는 대로 줌, 許施, 許落)을 하는가 가서 귀경(구경)을 가세 해서, '나는 손님이 와서 못 가겠네. 그러면 갈 때에 와서 그 확증(소식)이나 알려주고 가게.' 그렇게 이야기를 했어. '어떻게 운감을 하고 허급이 났는가?' 하니 '아, 음식이 부정이 끼어서 운감을 못 하시고 전부가 헤어져서 말하자며 돌아 가셨다." 고 그런 이야기를 이성계, 최경 장군에다가 했단 말이여.

"어찌 됐던지 너 생전 먹을 것을 주고, 생전 소금장사 할 돈을 대줄 테니, 우리가 아무날 날을 받아가지고 올라가서 산제를 모실 텐개, 또 연재 둥구나무 속에가 들어 앉았어 봐라/"

그랬어. 그래 소금장사고 뭐고 죄 팽개쳐 놓고, 그래 소금짐을 짊어지고 이성계 최경 장군이 날받은 그 날을 기해서 거기를 갔단 말이여.

가 가지고는 둥구나무에 들어 앉았어. 들어가 앉았는데 그날 저녁에 또 불러 그 시간이 되닝개.

"아무거시 목신! 아무거시 목신!"

불러서 또 대답을 한개,

"아, 오늘 저녁에 이성계하고 최경 장군하고 날을 받아갖고 다시금 깨끗허게 산제를 모신다고 하니, 팔도신령님네가 어떻게 하는고 우리 구경을 가세."

한개,

"나는 또 손님이 와서 못 가겠네."

한 것이 또 소금장사가 또 왔다 이거여.

"손님이 와서 못 가겠네 - 갔다 오다가 그 어떻게 된고 그것좀 알려 주소."

그렇게 이야기를 해서, 아 그래서 이성계하고 최경 장군하고 그날 저녁에 산제를 모셨는데, 모시고 인제 내려온데, (산제를) 모시고 났는데, 그 시간이 된개 새벽녘에 그 시간이 된개 목신이 내려온다 이거여. 내려오더니만, '아무거시 목신! 아무거시 목신!' 또 그런개, 둥구나무가 대답을 해.

"어-" 대답을 한개,

"오늘 저녁에는 팔도 산신령님네가 전부 음식이 좋고 깨끔허고, 그래서 말하자면 운감을 잘 하시고, 팔도 산신령님네가 다 허급을 하신디 태조대왕한테다가, 이성계한테다가 다 허급을 하신디, 지리산 여산신령님네가 불응을 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그 그래서 '왜 그러냐?'고 하닝개, '우투리 땜에 안된다.'고 그래, '우투리란 사람이 있는디, 우투리란 사람한테 왕이 가게 된개 자기는 허급을 하지 못한다.'고 지리산 여산신님네가 대답을 혀."

그런다고 그 이야기를 해, 소금 장사가. 우투리란 사람이 있는디 지리산 여산신령님네가 우투리란 사람땜에 당신은 허급을 못 한다고 그래서 그 말을 듣고는, 소금 장사가 내려와서 이성계하고 최경 장군하고 만났어. 그런 연유로 이야기를 하더라- 그런개,

"그러면, 너 생전 먹을 것을 줄 텐개 가지고 가서 장사 잘 해라."

하고, 막 돈이고 뭐이고 다 밀어줬어, 소금 장사를. 그런개 소금 장사를 보내고, 인제 우투리를 찾아야겠는데. 우투리를 찾아야겠는데, 우투리를 찾을 수가 있는가? 그래서 그 참, 조선 팔도를 전부 다 돌아당김서 우투리를 찾을라고 해 보니, 우투리란 사람이 없어. 그래서 경상북도 영양이란 데를 들어가닝개, 그게 해변가인데, 이렇게 담을 지나다가 본개, 그런 촌가에는 저쪽 집에서 오기가 바쁜개 서로 담을 넘어다 보고, 담을 넘어다 보고,

"아무거시 떡(宅), 아무거시 떡" 그렇게 부르는 수가 있거든. 그와 한가지로,

"우틀네! 우틀네!"

그렇게 불러, 그쪽 집에서. 여자 하나가 담을 넘어다 보고,

"어-" 그런개,

"내일 우리 밭 매러 와." 그래.

"아, 여기가 우투리가 있다!"

그래서 그만 거기서 최경 장군하고 이성계하고 알아가지고,

"아, 여기가 우투리가 있다!"

하고 그래가지고 그 주인을 찾아서. 주인을 한 것이 그 우투리 어머이 집에 가서 주인을 했어. 그 여자가 과택(과부)이라, 과택인데 주인을 해 놓고,

"우투리란 사람이 어떻게 된 연유냐?"고 물어보닝께,

"없다!"는 거여. 죽어 뻐려서 없다는 거여. 아이쩍에 죽어 뻐려서 갖다가 파묻어 버렸다는 거여.

그래 인자 과택이라 나서 그것을 수집(수색)을 할라고, 이성계가 별 수단을 다 하고 별 보물을 다 주어서 그 여자를 얻었단 말이여. 얻어가지고 살면서 그 자꾸 연유를 물은개, 그 여자가 한다는 말이, 아이쩍에 낳아논개 말을 하더라 이거여. 낳자말자 말을 함과 동시에 자기 어머니보고 서숙(조), 서숙이라고 있어, 조, 서숙 서 말하고, 제릅때기(겨릅대, 삼대)는 한 이십 다발하고, 메물(모질)을 한 칠판 말하고, 그래 가지고 저를 갖다돌라는 거여. 저한테로 갇다돌라는 거여. 그래서 그렇게 구해다 갖다주니까, 그 앞에 큰- 바닷물로 들어감서 요만한 작은 종이 크기의 쪽지를 하나 해 주어. 서자(書字)를.

"어머니가 나를 되(매우) 보고 싶으면 어머니가 이 글을 읽으면 바다가 갈라진개 한번 들어와서 보시오."

그래서 들어간 일밖에 없다 이거여. 그런 뒤에 한번도 못 봤다 이거여. 그래 이튿날 그 쪽지를 이성계하고 최경 장군하고 읽으닝개 물이 착! 갈라지고 육지가 된다 이거여. [조사자 : 거기가 경상도 어디요?] 경상북도 영양, 영양이란 데가 있어. 그래서 그 산속에가, 아니 바닷속에가 산이, 지리산맹이로(지리산처럼) 그-런 산이 있어. 그래 들어가서 뭐 장검(長劍)으로 가지고 암만 거시기허니(때리니), 눈꼽만한 흙 하나가 안 떨어진다 이거여, 쇠맹이로(쇠처럼). 그래 죽고살고 해 봐야 되들 안 하고. 최경 장군하고 이성계가 도로 나와서. 큰 사람들이라 놓은개, 자기 어머니 보고,

"그 애기, 말하자면 태(胎)를 무얼로 문질렀느냐?" 그런개,

"명 질으라고 대(竹)로 문질렀다."

이거여, 바느질 자(尺) 쪽으로, 말하자면 그래. 대나무로 해서, 지금은 마자(碼尺, 야드자, 90cm자) 있지. 일마 이마, 그 자로 문질렀다 이거여. 그래서 자(竹)를 이런놈(팔뚝 굵기의 동작)을 베가지고, (바다에 다시와서) 투두려 댄개 산(바닷속의 산)이 탁! 갈라져 버려. [조사자 : 그러니까 그 산이 쇠같이 단단한 것이지요?] 그렇지. 조화를 부렸지. 그래서 인자 산이 탁 갈라져서 본개, 전부 서숙은 전부가 군인이 되고, 그 낱개로 그대로 전부가 군인이 되고, 매물(메밀)은 투구가 되고, 제릅대기는 전부 말이 돼 가지고 전부 한 다리는 말에 들어얹고, 한 다리는 말게다(말에다가) 들어얹고, 한 다리는 땅에 두고, 인제 두 발만 들어얹어 버려면 되거든.

그래 인자 탁 열고 산을 갈라뜨려서 보니까 우투리가 하는 말이,

"너 들어올 줄 알았다." 그럼서,

"에미가 원수라."고 그래. 즈그 엄마가 그 소리만 안 했으면 문제가 없거든. 엄마가 원수라고. 그러닝개 세상바람이 들어가니까 사르르-녹아 버렸어 전부.

그리 되자, 그 이성계가 나와가지고 그 여자를 장검(長劍)으로 날려 죽여 버렸어. 탁! 베서 죽어뻐렸어. 좋은 자식을 방정맞은 년이 말을 해서 죽였다고. 내가 말을 해서 죽이기는 죽였는디, 니(네)가 방정맞은 년이라고. 그래서 인자 우투리를 죽여 버리고는 나오서 말하자면 왕을 산 디, 지리산 여산신령네가 그때 거부했다고, 당산한테 허급을 안 했다는 걸로, 밉다고 정상도(경상도) 지리산이 분명한디 전라도 지리산으로 귀양을 보내뻐렸어, 이성계가. 태조대왕이 보내뻐려서 지금, 어디를 가서 물어봐도 전라도 지리산이라고 하지 정상도 지리산이라고 안 해. 그때 이조 때 말하자면 요리 귀양을 보냈어. [조사자 : 원래는 지리산이 경상도에 있었구먼요? ] 시방도 지리산이 경상도에 있지. 천왕봉이 마천(馬川 저쪽 덕산 쪽으로 있으닝께는, 전라도는 택도 없는 산이지. 그렇지만 이성계가 귀양을 요리로 딱 보내 버렸응개 전라도 지리산이라고 한 것이지.

*<김구태(전주공전 전기과 1, 男 20세) 군이 1978. 09. 17 오후 6시경 전북 남원군 산내면 부운리 집에서 김부복 씨가 손자를 보면서, 처음은 사양하다가 구술한 것을 녹음해 온 것이다.>

 

◆ 둥구리(無名型) 전설

한 부부가 아이를 났는디 아이가 용사라. 머시마인데, 언젠가도 모르겠어요. 그래 아이를 나면 뭘해요. 아이가 봉사인데 그 날이 6월인가. 그런데 모를 심는데 말을 타고 한 놈이 오는데, 활을 들고 가다보니 아이가 봉사인데 모를 심는 것을 보는데, 벼 폭을 잘 가지고 심는지라. 그를 보고 놀라니 아이가 "이 정도보다 더 어려운 것도 할 수 있다."고 하니, 그러면 "나의 말의 발자국 수를 아느냐."고 하니 정확히 알아 맞추어서 사냥꾼이 졌지요. 사냥꾼이 생각하기를, "이 놈이 나의 부아를 돋구는구나."하고, 이 놈을 죽일거라고 하며, 그래 장에 가서 콩 세 되를 볶는데 하나라도 뛰어가면 안 되고 먹지도 말라 하니 "당신은 어떻게 해도 날 해칠 것이요."하고 콩을 볶는데, 콩 하나가 튀어 나가서 콩이 화살을 맞추어서 떨어지고 맞추어 떨어지고 맞추어 떨어지고 하는데 그만 그 사냥꾼이 화가 나서 화살을 쏘아서, 화살에 맞아 죽었지 않아요. 사냥꾼이 생각하기를 이제 죽었노라고 생각하고 그냥 갔는데, 그 아들이 죽으면서 억새풀 세폭시를 남기라 하고, 바위를 자르면 잘라지니까 그 속에 묻어달라고 하여 그대로 바위에 묻었대요. 10년이 흘렀어요. 그 사냥꾼이 생각해 보니까 하늘의 별을 보니까 그 아이가 아직 안 죽었다 이거야.

그래 그 아이가 살던 곳에 와서 아이가 어찌 되었느냐고 하면서 그 아이 어머니한테 족치는 거야.

그래 안 가르쳐 줄게 아니요? 그래 칼로 위협을 하니께 그만 어머니가 자기가 무서워서, 아이가 죽을 때의 유언을 말해주니 아무리 찌르려 해도 안 되던 것을 풀로 자르니까, 부하를 거느리고 그 아이가 눈을 뜨고 있더래요. 그 아이가 다리가 떨어지면 밖을 나와서 천하를 지배할 건데 그만 어머니가 가르쳐 주어서 그만 성공을 못했던 거요.

그의 남편이 아무런 원한이 없이 죽였으니 당신도 아들 신세를 망쳤으니 괘씸하다고 찍어 죽였대요.

*<송월영(남, 19세, 고3) 군이 1968. 01. 10. 아침 8시 전주에서 남원 내려가는 기차간에서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수집하였다. 전북 장수군 팔공산 근방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야기는 국민학교 때 11살 때 전북 장수군 장수면 안양리에서 아버지가 들려주신 것인데, 아버지는 친구에게 들었다고 한다.>

 

◆ 둥구리 전설

옛날 태조대왕은 지리산을 무서워 해서 항상 경계하고 있었지. 지리산 산신이 이태조와 대항할라고 인물을 낸다는 말이 있었거든. 지리산은 매산이고 서울 삼각산은 학산이라, 매가 학을 잡아먹을 것 아니여? 그래 지리산 정기를 바쳐서 아이 하나가 나왔는디, 숯구어 먹은 사람인지도 모르지. 그 아이 이름이 '둥구리'여, 둥구리. 지리산 정기받은 장사가 난 것이지. 이 어린애 태를 아무리 짤를라고(짜르려) 해도 낫도 안돼, 칼도 안돼, 아무 것도 못 짤라. 칼로도 안 돼 할 수 없이 새때기(억새)로 태를 가른개 그때사 갈라져, 이 아이가 자라서 천하장사가 됐어. 자연히 이 말이 서울까지 올라갔지. 서울서 잡으러 와. 그만 어린애는 지리산에서 놀고 심(힘)을 길르다가 그만 지리산으로 짚이(깊이) 들어가서, 지리산 산신령이 그만 커다란 집채만한 바우(岩) 속에다가 숨겨 버렸어. 아무도 모르지 인제 병사들이 왔어. 애가 어디 갔냐는 거여, 즈그 어매(둥구리 어머니)가 그만 행방을 갈쳐 줬네. 산에 가서 논다고, 그래 산을 허대도(헤매도) 못찾아 종내 바우 속에 든 둥구리를 찾겠는가. 그러자 또 와서 족쳐. 그러자 어매가 우리 아들은 큰 바우 속을 들락날락한다고 했어.

그래 바우를 가서 깨도 되겠는가? 안돼, 그래 또 즈그 어매를 족친개, 둥구리가 태어날 때 이상한 일이 없었느냐고 태를 뭘로 잘랐느냐고 한개, 어매가 방정맞게 갈쳐줬어. 새때기로 잘랐다는 거여. 그래 새때기로 바위를 짜른개, 두부 썰 듯이 삭삭 들어가서 둥구리가 그만 바우 숨어 있다가 몸이 두 동가리 나서 죽었어. 안됐지. 그래서 그만 지리산 정기 받은 둥구리는, 이태조 대신 나라를 세울 장사가 죽어 버렸어. 지리산 산신령은 노염이 단단히 나서 안 가. 참예도 안 하고 항복도 안 해. 지금 지리산 가면 이태조가 지리산 산신령을 찾아가서 제발 도와달라고 빌고 제사 지내던 데가 있네.

나중에 산신령은 이태조 정성을 보아서 노염을 풀고 "서울로 가 있으면 내가 찾아가마."고 약조를 했지. 이 태조가 하루는 궁궐에서 자고 있는디, 지리산 산신령이 집시랑(처마) 끝에 가서 방울을 딸랑딸랑 흔들고 와 버렸어. 지리산이 매신인개 매를 타고 가서 매방울만 흔들고 온 거여. 이성계야 좋아 죽겠지. 그래도 지리산 산신령이 괘씸하다고 정상도(경상도) 지리산을 전라도로 귀양을 보내 버렸어. 그래 둥구리는 죽고 산신령은 귀양와서 전라도가(에) 있어.

*<박씨 할머니(여, 70세, 필자 친구의 고모할머니)가 전북 남원군 운봉면 서천리 집방에서 1965. 01. 15. 밤 9시 이야기를 들으러 갔더니 이야기 판을 벌인 자리서 구술한 것이다.>

   생각해 보기

◆ 민중적 영웅의 비극성

'아기 장수' 전설은 우리 나라 전역에 걸쳐 수집되며 그 이야기 유형도 100가지가 넘는다. 그러나 '미천한 혈통의 인물 → 탁월한 능력 → 비참한 죽음' 이라는 기본 줄거리는 같다. 좌절과 파국으로 끝을 맺는 이 비극적 설화는 기존 질서의 장벽 때문에 패배할 수밖에 없는 민중적 영웅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개국 신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투쟁에서의 승리로 영광을 차지하는 상층 영웅의 이야기와 대조적 양상이다.

그렇다면 왜 평민적 영웅은 비극적 죽음으로 생애를 마감해야 하는가? 아기 장수는 천상에서 점지 받아 미래의 가능성을 가진 존재이다. 아기 장수의 가능성은 곧 기존 질서와의 갈등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강력한 중앙 집권적인 통치 체제의 확립과, 평민이 주도한 민란이 하나같이 패배로 귀결되었다는 역사적 체험이 민중들로 하여금 보수적 체제에 안주하려는 현실 추구 성향을 형성하게 되었다. 기존 질서와의 갈등을 우려하여 부모가 아기 장수를 죽였다는 것은 바로 이런 정신의 소행인 것이다.

 

◆ 비극의 의미

전설이 역사적 사실을 상징적으로 수렴 · 변형시킨다는 원리에 비추어 볼 때, 아기 장수 전설은 세상에 부대끼며 살아온 평민들, 새로운 미래의 희망조차 버리고 살아야 하는 민중들의 삶을 형상화한 것이다. 비록 거대한 현실적 권력 앞에 비극적 죽음으로 삶을 마감했지만, 아기 장수는 민중의 희망이요, 꿈이었다. 아기 장수가 하나같이 평민의 집에서 태어났다는 점과 겨드랑이의 날개가 이것을 증명한다. 그래서 아기 장수 전설은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들의 심리가 역설적으로 상징화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용마는 아기 장수의 비극적 죽음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이며 아기 장수 출현의 증거물 역할도 한다. 우리 속담에 '장수 나자 용마 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시운이 맞아 좋은 일이 이루어짐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장수가 죽자 용마가 죽은 것은 그만큼 안타까운 일로서 시운의 불일치에 따른 비극성이 강조된 구성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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