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생전(鞠先生傳)                           -이규보-  

줄거리

국성의 조부 모(보리)는 주천 고을 사람이다. 모의 아들 차(흰 술)는 곡씨의 딸을 취하여 성(聖)을 낳았다. 성은 어려서부터 도량이 넓어 여러 사람들의 귀여움을 받았으며 벼슬이 높아갈수록 임금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이에 세상사람들은 그를 ‘국선생’이라 불렀다.

그에게는 혹 · 폭 · 역이라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아비가 임금의 사랑을 받는 것을 기화로 방자하게 굴었다. 그리하여 모영(붓)이 임금에게 글을 올려 탄핵하기에 이른다. 이에 성의 세 아들은 독약을 마셔 자결했다. 국성도 벼슬을 박탈당하고 서인으로 물러난다.

국성이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자 여러 고을에서 도둑들이 떼지어 일어났다. 임금이 도둑들을 토벌하라는 명을 내리지만 적임자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국성이 원수로 기용되어 도둑들을 토벌해 공을 세운다.

2년 후, 그는 병약함에 상소를 올려 자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천수를 다하고 조용히 세상을 떠나갔다.

이해 및 감상

'국선생전'은 임춘(林椿)의 '국순전(麴醇傳)'과 마찬가지로 술(누룩)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주제는 다르다. '국순전'은 주인공인 국순이 세상에서 귀하게 대접받고 방탕한 군주에게 크게 등용되었다가 나라를 어지럽혀서 내침을 당하고 분한 나머지 병이 들어 죽는다는 내용이다. '국선생전'의 국성은 일시적인 시련을 견딜 줄 알아서 성품이 어질고 덕과 충성이 지극한 긍정적 인물로 서술되었다.

'국선생전'은 '국순전'의 영향을 받아 창작되었으나, '국순전'이 향락만을 일삼는 요사한 벼슬아치를 풍자한 반면, '국선생전'은 위국충절의 대표적 인물을 등장시켜 사회적 교화를 강조하였다.

이 작품에 대한 작자 자신의 사평(史評)을 보면,

"국씨는 본래 한미한 농가의 소생으로 기신하여 국사에 기여했으며, 제왕의 마음을 윤택하게 하여 태평성대를 이루는 데 공이 컸으나, 과분하 은총을 입고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혀 그 화가 자손에게까지 미쳤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원한도 없이 물러나 자성하였고, 만년에는 분수를 지킬 줄 알았으며 천수(天壽)로 세상을 마쳤다. 기미를 보아 이루어 나간다. 즉 순리를 알고 처신한다’라는 주역의 기록과 부합되는 바가 있지 않느냐?" 고 하였다.

작자는 이 작품에서 술을 의인화하여 그 인물을 '선생'이라 일컫고, '국성(麴聖)'이라고까지 칭찬했다. 국성의 공적은 막힌 것을 열어 주고, 경화된 것을 풀어 주는 데 있다고 본 데에서 작자 자신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 작품은 직접 서막의 이름을 인용하였다는 면에서 <태평광기>의 서막설화에 영향을 입은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으며, 우의적 수법면에서는 임제의 수성지에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요점 정리

갈래 : 가전(假傳)체

연대 : 고려 중엽

성격 : 풍자적

구성 : 전기적(傳記的)구성

* 도입 → 국성의 가계와 신분

* 전개 → 국성의 인품과 행적, 국성의 세 아들과 친구의 죽음 및 국성의 폐서인, 국성의 도적 토벌 · 귀향과 죽음

* 비평 → 국성의 생애에 대한 사관의 평가

제재 : 누룩

주제 : 위국 충절의 사회적 교훈을 강조. 군자의 처신을 경계함.

의의

* 임춘의 ‘국순전’의 영향을 받았다. 송나라의 ‘태평광기’의 영향을 받음.

* <국순전>이 풍자적인 표현임에 비해 권선적(勸善的)이며 교회적(敎誨的-잘 가르치고 타일러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것)이다.

참고사항

◆ '국선생전'을 통한 작자의 의도

이규보는 이 작품을 통해 술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덕과 패가망신의 인과 관계를 군신 사이의 관계로 옮겨 놓고 그 성패를 비유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주인공 국성을 신하의 입장으로 설정하고 있음이 주목되는데, 이는 유생의 삶이란 근본적으로 신하로서 군왕을 보필하여 치국의 이상을 바르게 실현하는 데 있음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라 하겠다. 신하는 군왕으로부터 총애를 받게 되면 자칫 방자하여 신하의 도리를 잃게 되어 한때 유위유능(有爲有能)한 존재에서 국가나 민생에 해를 끼치는 존재로 전락하기 쉽고, 마침내 자신의 몰락까지 자초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신하는 신하의 도리를 굳게 지켜 나감으로써 어진 신하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면서, 동시에 때를 보아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함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작자는 국성의 공적은 막힌 것을 열어 주고, 경화된 것을 풀어 주는 데 있다고 하여 스스로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 '국선생전'과 '국순전'과의 관계

이규보의 '국선생전'은 임춘의 '국순전'과 마찬가지로 술(누룩)을 의인화의 대상으로 하였지만 그 주제는 다르다. '국순전'은 도량과 인품을 갖추고 있는 국순이 방탕한 군주에게 등용되었다가 세상을 어지럽히고는 은퇴해서 곧 죽었다는 내용으로, 정사를 돌보지 않는 군주까지 비판하면서 술로 인한 폐해를 드러낸 것이다. 반면에 '국선생전'의 국성은 도량이 크고 성품이 어질며 충성이 지극한 긍정적 인물로 서술되었다. 국성이 '국선생'이라 불린 점이라든가, 만년까지 제 본분을 지키고 화평한 삶을 누린 것이 이와 같은 인식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두 작품은 술의 내력, 성질, 효능 등을 사람의 개성, 기질, 욕구 등으로 의인화하는 수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나, 사건 구조와 인물형에 있어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 가운데서 술의 효능과 가치를 훨씬 긍정적으로 표현한 쪽은 물론 이규보의 ‘국선생전’이다.

구분

국순전

국선생전

공통점

  • '술(누룩)'을 의인화 함.
  • 관련 인물과 지명, 서술 방식이 유사함.
  • 조선 시대 '수성지', '천군연의', '천군본기' 등 술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계승됨.

차이점

사건의 구조

국순은 임금의 총애를 받으며 향락과 부정을 일삼다가 버림받고 죽음을 맞음.

국성은 임금의 총애가 지나쳐 방종하다가 스스로 물러나 잘못을 뉘우치고 후에 백의종군하여 충성을 다 함.

인물형

부정적 인물형

→ 술의 역기능 강조

긍정적 인물형

→ 술의 순기능 강조

창작 의도

(주제)

순(醇)의 일생을 통하여 간신배들과 방탕한 군주를 풍자하고 비판함.

성(聖)을 위국 충절의 모범적 신하로 형상화함으로써 사회적 교훈을 강조함.

관련 작품

<태평광기>의 '서막설화'의 영향을 받음.

임춘의 '국순전'의 영향을 받음.

 

◆ 가전체 문학 창작의 시대적 배경

가전체 문학이 많이 창작된 고려 중엽 이후는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무신의 난이 발생하여 사회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몽골의 침입까지 겹쳐 사회는 극심한 내우외환으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 전반의 도덕률과 가치관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는데 교술 갈래로서 교훈적, 비판적 성향을 강하게 띠는 가전체 문학 작품의 창작은 바로 이러한 가치관의 혼란과 붕괴를 바로잡으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고려 중엽 이후 관계에 진출한 신진 사대부들은 사물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경기체가 '한림별곡'에서 사물을 열거하는 표현 방식도 이와 관련되어 있는데, 이와 같은 사물에 대한 관심이 가전체와 같은 문학 작품을 낳게 한 것이다.

 

◆ 가전체 문학의 이해 : 교술갈래적 측면

가전체는 사물을 의인화해서 사람인 양 다루며 그 일생을 전(傳)으로 서술한 글이므로, 등장시킨 사물을 잘 알아야 이해할 수 있고, 작품 자체로서의 유기적인 전개는 갖추지 않고 있다는 점이 교술문학이라는 가장 뚜렷한 증거이다. 더구나 전을 엮어 나가면서 실제로 있었던 일에 근거를 둔 수많은 고사를 동원하고 있어서 그것들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또한 작품 이해의 필수적인 요건이다. 사물 자체의 속성과 잡다하게 동원한 고사를 통해서 작품 외적 세계를 계속 작품 안에 끌어들이면서, 그 모든 요소를 사람의 일생을 서술해 나가는 전의 형식에 따라 배치한 까닭에 작품이 와해되지 않도록 하는 묘한 구성을 갖춘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역량이야말로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지식과 표현의 절묘한 결합이다.

그런데 사물을 의인화했다는 것은 사물과 사람이 전혀 별개의 존재일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주기도 한다. 가전체는 설정된 사물과 사람의 연관에 근거를 두고 사람의 일생을 통해서 사물의 속성을 생동감 있게 드러내면서, 또한 사물의 쓰임새를 비유의 매체로 삼아 사람의 운명을 문제삼기도 하는 이중의 표현을 개척했다. 그래서 잘못된 세상을 비판하고 풍자하면서 사람이 사는 길을 찾자는 생각까지도 나타낼 수 있었다.

작품 읽기

국성(맑은 술을 의인화한 표현)의 자는 중지니, 주천(중국 춘추 전국 시대의 주나라에 있던 땅 이름) 고을 사람이다. 국성이란 맑은 술을 말하는 것이요, 중지란 곤드레만드레를 뜻한다. 어려서 서막(중국 진나라 사람으로 지독한 애주가임)에게 사랑을 받아, 그가 이름과 자를 지어 주었다.

그의 먼 조상은 원래 온(溫)이라는 땅에서 살았다(누룩은 따뜻한 온도에서 익혀야 한다는 뜻을 내포함). 농사를 지어서 넉넉하게 먹고 살았는데 정나라가 주나라를 칠 때 포로가 되었다가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여, 그 자손들은 간혹 정나라에 흩어져 살기도 한다. 국성의 증조부는 그 이름이 역사에 실려 있지도 않다가, 조부모가 주천으로 이사하여 눌러 살면서 드디어 주천 고을 사람이 되었다. 아비 차(흰 술을 의인화한 말)에 이르러 비로소 벼슬을 하였다. 차는 평원 독우(격상(명치 위)에 머물러 숨이 막히게 하는 좋지 않은 술)가 되어 사농경(농사에 관한 일을 맡아 보는 벼슬) 곡씨(곡식을 의인화한 말)의 딸과 결혼해서 성을 낳았다.

* 국성의 가계 소개

성은 어려서부터 도량이 넓었다. 손님들이 그 아비를 보러 왔다가도 성을 눈여겨보고 사랑스러워서 말하기를,

"이 아이의 마음과 도량이 출렁출렁 넘실넘실 마치 만경(수면이 끝없이 넓음)의 물결과도 같아서, 더 맑게 하려 해도 맑아지지 않고, 흔들어도 흐려지지 않으니(더할 수 없이 맑으니) 성과 함께 즐기는 것이 좋겠네." / 하였다.

성은 자라서 중산의 유영(중국 위진 시대의 문인으로, 죽림 칠현의 한 사람으로 '주덕송'을 지음), 심양의 도잠(도연명, 애주가)과 더불어 벗이 되었다. 이 두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하루라도 이 친구를 만나지 못하면 마음 속에 비루하고(마음이 고상하지 못하고 더러움) 이상한 생각이 싹튼다." / 하며, 서로 만날 때마다 며칠 동안 모든 일들을 잊고 마음으로 취해야만 헤어졌다.

* 국성의 도량과 교우관계

나라에서 성에게 조구연(조구란 술지게미를 산처럼 쌓은 더미를 말하며, 연이란 하급 관리를 뜻함. 술지게미를 의인화한 말)을 시켰으나, 부임하지 않자 공경들이 계속하여 그를 청주종사(맛이 좋은 술을 의인화한 표현)로 천거했다. 그러자 임금은 조서를 내려 그를 불러 말하기를,

"이 사람이 바로 주천의 국생인가? 내 그대의 향기로운 이름을 들은 지 오래였노라." / 하였다.

이보다 앞서 태사가 임금께 아뢰기를,

"지금 주기성이 크게 빛을 냅니다." / 하더니, 얼마 안 되어 성이 도착한지라. 임금은 또한 이 때문에 더욱 기특하게 여겼다.

* 국성의 정계 진출

임금은 곧 성에게 주객 낭중(손님을 접대하는 관직) 벼슬을 주고, 얼마 안 되어 국자 좨주(국자학의 교장. '좨주'란 옛날에 잔치를 베풀 때 나이 많은 어른이 먼저 술을 땅에 따라 신에게 제사 지낸 데서 나온 말로, 고려와 조선초에는 종3품 벼슬을 일컫는 말로 쓰였음)로 올리어 예의사를 겸하게 하였다. 이 때부터 모든 조정의 잔치나 종묘의 제사, 천식(천신할 때 올리는 음식으로, '천신'이란 계절 따라 새로 난 과일이나 농산물을 신에게 바치는 일을 말함), 진작(임금께 나아가 술잔을 올림)의 예가 모두 임금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임금은 그가 믿음직하다 해서 승진시켜 승정원(국왕의 비서 기관으로 왕명의 출납을 맡았던 관아) 재상으로 있게 하고 융숭한 대접을 하였다. 출입할 때에도 가마에 탄 채 대궐에 오르도록 하고(술이 상에 차려져 황제의 연회에 올려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 이름을 부르지 않고 국선생이라 일컬었다. 때때로 임금의 마음이 불쾌할 때라도 성이 들어와 뵈면 임금의 마음은 풀어져 웃곤 하였다(술을 마시면 임금이 기분이 좋아진다는 뜻임).

성질이 구수하고 아량이 있어, 날이 갈수록 사람들과 친근해졌고 임금과도 스스럼없이 가까워졌다. 이런 까닭에 더욱 임금의 사랑을 받게 되어 항상 따라다니면서 함부로 잔치 자리에서 놀았다.

* 국성에 대한 임금의 총애

성에게는 세 아들, 혹(酷, 독한 술을 의인화)과 폭(진한 술의 의인화)과 역(쓴 술의 의인화)이 있었다. 이들은 그 아비가 임금의 사랑을 받는 것을 믿고 방자하게 굴었다. 그러자 중서령 모영(붓의 의인화)이 임금에게 글을 올려 탄핵하기를,

"천하 사람들은 성이 폐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것을 모두 병통(어떤 사물의 자체 안에 해가 되는 점)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성이 조그만 신임을 받고 요행히 벼슬 계급이 3품에 올라서, 많은 도둑을 궁중으로 끌어들이고 사람들을 휘감아서 해치기를 일삼고 있습니다(술의 폐해를 지적한 말). 이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분하게 여겨, 소리치고 반대하며 머리를 앓고 가슴 아파합니다. 성이야말로 나라의 병통을 바로잡는 충신이 아니고, 만백성에게 해독을 주는 도둑입니다. 더구나 성의 세 아들이 제 아비가 폐하께 총애받는 것을 믿고 방자하게 굴어 사람들이 다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이들에게 모두 사형을 내리셔서 뭇사람들의 입을 막으소서."

하였다. 그러자 성의 아들 셋은 즉시 독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성도 죄를 받아 평민으로 폐해졌다.

한편 친한 벗인 치이자(말가죽으로 만든 주머니로, 술을 넣는 데 쓰임)도 성과 친하게 지냈다 하여 수레에서 떨어져 자살하였다.

* 탄핵으로 서인이 된 국성과 자식들의 자살

처음에 치이자는 우스갯소리를 잘 해서 임금의 사랑을 받았다. 자연 국성과 친하게 되어, 임금이 출입할 때에는 항상 수레에 실려 다녔다. 어느 날 치이자가 몸이 곤해서 누워 있을 때 성이 희롱하며 말하기를,

"자네 배는 크지만 속이 텅 비었으니 그 속에 무엇이 있는가?" / 하니, 치이자가 말하기를,

"자네들 수백 명은 넉넉히 용납할 수가 있지." / 하였다. 이들은 이렇게 항상 서로 우스갯소리를 하며 지냈다.

* 국성의 친한 벗 치이자

성이 벼슬을 그만두자(술을 못 마시게 되자) 제(배꼽) 마을과 격(가슴) 마을 사이에 도둑들이 떼지어 일어났다(술이 없어지자 사람들 마음에 괴로움이 많이 생겨났다. 즉, 여러 가지 근심 걱정을 술로써 잊어 버리고 위안을 받던 사람들이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되자 근심 걱정을 풀지 못해 괴로워하게 되었다는 뜻임). 이에 임금은 이 고을의 도둑들을 토벌하라는 명을 내렸다. 하지만 적임자가 쉽게 물색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성을 장수로 삼아 보내니, 부하를 몹시 엄하게 통솔하였고, 모든 고생을 군사들과 같이 하였다. 성은 수성(근심)에 물(술을 말함)을 대어 한 번에 함락시키고, 거기에 장락판(장락은 길이 즐거워 한다는 뜻)을 쌓고 돌아왔다. 임금은 그 공로로 성을 상동후로 봉하였다.

* 도둑을 평정하여 명예를 회복한 국성

그 후 2년이 지나 성이 벼슬에서 물러나기를 청하며 아뢰기를,

"신은 본래 가난한 집 자식이었습니다. 어려서는 몸이 빈천해서 이곳 저곳으로 남에게 팔려다니는 신세였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폐하께서 마음을 터놓고 신을 받아들이셔서 할 수 없는 몸을 건져 주시고 강호의 모든 사람들과 같이 용납해 주셨습니다. 하오나 신은 일을 크게 하시는 데 더함이 없었고, 나라의 체면을 더 빛나게 하지 못했습니다. 앞서 제 몸을 삼가지 못한 탓으로 시골로 물러가 편안히 있었을 때, 비록 엷은 이슬은 거의 다 말랐으나 그래도 남은 이슬 방울(충성심을 상징함)이 있어, 감히 해와 달(임금을 상징함)이 밝은 것을 기뻐하며 다시금 찌꺼기와 티가 덮인 것을 열어 젖히나이다(비록 보잘 것 없지만 충성심이 남아 있어 임금님이 계신 것을 기뻐하며 악을 물리칠 수 있었다는 뜻임). 젖히나이다(비록 보잘것 . 또한 그릇에 물이 차면 엎어지는 것은 모든 물건의 올바른 이치옵니다. 이제 신은 목이 말라 물을 자꾸 먹는 소갈의 병을 만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사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명을 내리시어 신으로 하여금 물러가 여생을 보내게 해 주옵소서."

하였다. 임금은 승낙하지 않고 신하에게 송계(松桂), 창포 등의 약물을 가지고 그 집에 가 병을 살피게 했다. 그러나 성은 여러 번 글을 올려 굳이 사양하자 임금이 부득이 허락하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려 보냈다. 성은 고향에 돌아와 천수(천성적으로 타고난 수명)를 다하고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우 현(막걸리)은 벼슬이 이천 석에 오르고, 아들 익(색주), 두(두 번 빚은 술), 앙(막걸리), 람(감을 우려 내어 만든 술)은 도화(복숭아꽃) 즙을 마셔 신선이 되는 법을 배웠다.

* 국성의 치사(致仕)와 죽음

사신은 말한다.

"국씨는 원래 대대로 농가 사람들이었다. 성이 넉넉한 덕과 맑은 재주가 있어서 임금의 심복이 되어 나라일에 참여하고, 임금의 마음을 깨우쳐 주어, 태평스럽고 큰 공을 이루었으니 장한 일이다. 그러나 임금의 사랑이 극도에 달하자 마침내 나라 기강을 어지럽히어 이런 일은 사실상 그에게는 유감이 되지 않는다. 그는 만절(나이가 들어 늙었을 때)이 넉넉함을 알고 스스로 물러나 마침내 천수를 다하였다. <주역>에 '기미를 보아서 이루어 나간다[見機而作 : 낌새를 알아채고 미리 조처함. 순리를 알고 처신한다는 의미]' 하였으니, 성이야말로 거의 여기에 가깝도다."

* 국성에 대한 사신의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