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순전(麴醇傳)                                -임 춘-  

줄거리

국순이란 ‘누룩술’이란 뜻이다. 그의 조상은 모(牟)로서 보리를 뜻한다. 곧 보리의 후손이 누룩술이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어느 날, 임금은 모에게 자손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가 사는 고을 근처에다 명을 내려 그의 집에 예물을 후하게 보내도록 하였다. 또한 신하에게 명하여 친히 그의 집에 가서 교분을 맺으며 세속사람과 사귀게 했다. 모의 자손은 상대방을 감화하고 가까워지게 하는 지혜와 덕이 있어 임금은 그에게 정문(旌門)을 내렸고 표창했다.

위나라 초, 국순의 아비 주(酎)의 이름이 세상에 나기 시작했다. 주는 실상 소주이다. 진나라 세상이 되자 주는 장차 세상이 어지러워지리라는 것을 알았다. 주는 도량이 넓고 커서 마치 만경(萬頃)의 바다 물결과 같았다. 그가 풍기는 기운은 한 세상을 뒤엎을 듯했으며, 그 기운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기도 했다. 사람들으 그를 국처사라 부르기도 했다. 사람들이 여럿이 모였다가도 만일 국처사가 오지 않으면 모두가 쓸쓸한 표정이었다.

진의 후주(候主) 때다. 임금과 신하가 회의를 할 때면 반드시 순(醇)을 시켜 술잔을 채우게 했다. 이에 순은 특권을 얻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게 되었다. 순은 또 임금의 입에 술로 재갈을 물리듯 해서 아무런 말도 못하게 했다.

그러나 순의 입에서는 늘 냄새가 났다. 임금이 그것을 싫어해서 순은 별수없이 관(冠)을 벗고 사죄했다. 비틀거리며 집에 돌아온 순은 갑자기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순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그러나 족제(族弟)로 청(淸)이 있었는데, 그가 당나라에서 벼슬하여 내공봉까지 지냈다. 이로부터 그의 자손이 온 천하에 퍼지게 되었다.

이해 및 감상

국순전은 고려 고종 때의 문인인 임춘이 지은 가전체 작품으로서 술을 의인화한 작품이다. 가전(假傳)은 세상을 비판하고 풍자하면서 계세징인(戒世懲人)하고자, 사물을 의인화하여 실전(實傳)과 같은 기술 방법으로 써 나가는 국문학의 한 갈래이다. <국순전>은 술을 의인화하여 술과 인간의 관계를 말한 것으로, 술의 내력과 국가에서 개인에 이르기까지 흥망을 풍자한 것으로 현존하는 가전체의 효시가 된다.

<국순전>에 나타난 술의 행적은 도량이 넓고 기운을 붇돋우는 재간이 있어 모두의 흠모를 받기는 하지만, 벼슬길에 요행히 올라서는 향락만을 일삼고 왕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였다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즉, 술은 흥을 돋우어 주는 것이지만, 너무 마시면 나라마저도 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인간이 술을 좋아하게 된 것과 때로는 술 때문에 타락하고 망신하는 형편을 풍자하고 있다. 그 당시 술에 빠져 향락만을 일삼던 벼슬아치들을 꾸짖고, 교활한 방법으로 임금을 혼란에 빠지게 하여 정사를 그르치게 하는 무리들을 지탄하는, 다분히 풍자적이면서 작가의 창작의도가 또렷하게 나타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당시 국정의 문란과 병폐, 특히 벼슬아치들의 발호와 타락상을 고발하면서 소인배들의 득세로 뛰어난 인물이 소외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임춘이 이와 같은 가전체 형식을 가지고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당대에 몰락하게 된 자신의 처지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집안이 몰락하고 자신의 목숨만 겨우 부지한 처지는 한스러운 세상에 대한 비판의식을 강하게 갖게 했던 것이다. 즉 무신란에서 피해를 입은 구 귀족의 잔존 세력에 속하는 그는, 관념적인 사고의 틀을 깨고 구체적인 사물과의 일상적인 관계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가전의 형식을 통해서 나타낸 것이다.

요점 정리

연대 : 고려 중엽

갈래 : 가전체(假傳體)

성격 : 풍자적, 비판과 경계의 문학

표현 : 의인법

구성 : 일대기를 중심으로 한 순차적 구성

* 도입 → 국순의 가계 소개

* 전개 → 국순의 성품과 정계 진출, 임금의 총애와 국순의 전횡, 국순의 은퇴와 죽음

* 비평 → 국순의 생애에 대한 사관의 평가

제재 : 술(누룩)

주제

* 임금께 아부하는 간사한 벼슬아치의 풍자

* 술의 내력과 술에 의한 조정의 흥쇠(興衰) 풍자

출전 :<서하선생집>, <동문선>

의의

① 현전하는 가전체 문학의 효시

② 술을 의인화한 이규보의 <국선생전>에 영향을 미침.

참고사항

◆ 지은이 : 임춘(林椿 1147-1197) 고려 중기의 문인. 호는 서하(西河). 정중부의 무신란 때에 일가가 피해를 입고, 겨우 목숨을 보전하였다. 문명(文名)은 크게 떨쳤으나 과거에 번번이 낙방하였다. 불우한 일생을 보내면서도, 이인로 등과 죽림고회(竹林高會)를 이루어 시주(詩酒)로 생활하며 많은 시문을 남겼다. 사후에 그의 좋은 글벗이었던 이인로에 의해 <서하선생집> 6권이 간행되었고, 가전 작품으로 '국순전'과 '공방전'이 있다.

 

◆ '가전(假傳)'에 대하여

가전은 고려 중기 이후 일부 문인들에 의해 이따금씩 창작된 특수한 한 갈래로서, 가전체 혹은 의인전기체(擬人傳奇體)라고도 불린다. 이 부류의 작품들은 어떤 사물을 역사적 인물처럼 의인화시켜서 그 가계(家系)와 생애 및 개인적 성품, 공과(功過)를 기록하는 전기(傳記)의 형식을 빌었기 때문에, 실전(實傳)에 상대되는 가전(假傳) 또는 의인전기체라고 하는 것이다.

고려 후기에 가전이 발달하게 된 까닭은 그 창작 계층인 사대부들의 사상적 특질 때문이라는 설명이 정설화되어 있다. 즉, 이 시기의 사대부들은 종래의 구귀족과는 달리 세계와 인간 생활을 구성하는 실제적 사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려 하였던 바, 이에 따라 사물과 관념을 긴밀하게 통합하여 파악하는 양식인 가전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해지는 가전체 작품은 대체로 계세징인(戒世懲人)을 목적으로 지어진 이야기로, 교훈적이며 우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창의성이 상당히 가미된 허구적 작품이라는 점에서 소설문학에 한 단계 접근한 문학양식으로, 설화와 소설의 교량적 구실을 한 점에서 국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

가전의 대표작에는, 임춘-국순전(술 의인화). 공방전(돈 의인화). 이규보-국선생전(술 의인화). 청강사자현부전(淸江使者玄夫傳 거북이 의인화). 이곡-죽부인전(竹夫人傳 대나무 의인화). 이첨-저생전(楮生傳 종이 의인화). 석식영암-정시자전(丁侍者傳 지팡이 의인화) 등이 있다.

 

◆ '가전(假傳)'의 문학사적 위치

흔히, 가전을 설화와 소설의 교량적 위치에 두어 '설화 → 가전 → 고전소설'의 변천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친 단순 논리이다. 먼저, 얼마나 많은 전대의 설화들이 수용되었는가라는 관점에서, 고려 시대 가전 작품들을 살펴보면, 설화가 가전에 미친 영향이 지극히 미미함을 알 수 있다. 설총의 <화왕계>가 우리나라 가전의 선구적 작품이라 할 때, 그것은 단순히 의인체라는 점에서 그런 것이지 본질적인 면에서 가전은 중국에서 유입되어 변용된 양식이라고 해야 옳다.

가전과 설화의 이상과 같은 관계는 설화와 고전소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가전은 소설처럼 일정한 사건을 중심으로 전후의 내용이 유기적인 연결 관계에 놓여 있지 못하다. 사실을 중심으로 하는 내용 단락들의 독립성이 우세하다는 면에서 소설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따라서, 가전은 소설의 독서 과정에서 맛볼 수 있는 긴장감을 느낄 수가 없는 문학이다.

물론 조선시대의 한문 소설 중, <화사>나 <수성지> 같은 작품들은 가전의 형식을 본뜨면서, 사건 중심으로 허술한 비전기체라는 점 때문에 '가전 → 고전소설'의 영향 관계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고전 소설 전반에 걸친 현상은 아니다. 다만, 대부분의 가전과의 막연한 유사성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모든 문학이 허구성을 바탕으로 창조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두 문학 양식의 본질적 영향 관계로 설정하기에는 너무도 추상적인 요소이다.

 

◆ '국순(술)'의 양면성

<국순전>에 나타난 술의 행적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국순의 도량이 크며 남의 기운을 북돋워 주는 재간이 있어 위로는 높은 벼슬아치에서부터 아래로는 머슴 · 목동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흠모했다는 긍정적인 면이고, 다른 하나는 순이 벼슬길에 오르면서 왕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고 돈을 거두어 들이는 등의 비리를 저질러 여론의 지탄을 받다가 하루 저녁에 죽는다는 부정적인 면이다. 이 양면성은 술의 속성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속성이기도 하다. 술은 사람의 흥을 돋구어 주는 것이지만 너무 마시면 방탕으로 흘러 스스로를 망칠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신하된 사람은 왕의 신임을 얻어 국가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될 수도 있지만, 자기 분수를 지키지 못하여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왕위에 있는 사람도 관리를 잘못 등용하여 정사를 그르치는 과오를 저지르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작품 읽기

국순(麴醇, 술을 의인화한 말. 술의 재료인 누룩을 성으로, 술을 이름으로 삼음)의 (본이름 외에 부르는 이름, 예전에 이름을 소중히 여겨 함부로 부르지 않았던 풍습이 있어서 흔히 장가든 뒤에 본이름 대신으로 불렀음)는 자후이니, 그 조상은 농서(진 · 한 시대 군의 이름)이다. 90대조인 (牟, '보리'를 의인화 한 말)가 후직(중국 주나라의 선조로, 농사일을 잘 다스려 순 임금이 후직이란 벼슬을 줌)을 도와 뭇 백성들을 먹인 공이 있었으니, <시경>에 이른바,

"내게 밀 보리를 주다." / 한 것이 그것이다. 모가 처음 숨어 살며 벼슬하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반드시 밭을 갈아 먹으리라." / 하며 시골에서 살았다.

임금이 그 자손이 있단 말을 듣고 조서(임금의 명령을 쓴 문서)를 내려 안거(앉아서 탈 수 있게 만든 좋은 수레)로 부르며, 각 고을에 명하여 후한 예물을 보내라 하고, 아래 신하를 시켜 친히 그 집에 나아가, 드디어 정이 두터워지고 상대방을 감화시켜 가까워지는 맛이 있게 되니(발효되어  속이 너그럽고 편안한 맛이 생김), 서로 기뻐서 말하기를,

"나를 이루어 주는 자는 벗이라 하더니, 과연 그 말이 옳구나." / 하였다.

이후로 그의 맑은 덕이 널리 알려지니, 임금께서 그 집에 정문(충신, 효자, 열녀를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세워 주던 붉은 문)을 표하였다. 그리고 임금을 따라가 원구(천자가 동지에 하늘에 제사 지내던 곳)에 제사한 공으로 중산후에 봉하니, 식읍(공신에게 내리어, 나라에서 거두어들여야 하는 조세를 그 공신이 맡아 쓰게 한 고을) 일만 호에 실제 수입하는 것은 오천 호요, 성을 국씨라 하였다.

그의 5세손이 성왕(成王)을 도와 나라일을 제 책임으로 삼아 술에 취해 사는 좋은 세상을 이루었다. 그러나 강왕이 위에 오르자 점차 박대를 받아 마침내 금고(금주령이 내려져 술을 못 마시게 됨)에 처하여져, 국가의 명령으로 꼼짝 못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후세에 나타난 자가 없고, 모두 민간에 숨어 살게 되었다(금주령으로 인한 밀주 출현).

* 국순의 집안 내력 소개

위나라 초기에 이르러 순의 아비 (酎, 소주, 진한 술을 의인화 한 말)가 세상에 이름이 알려져, 상서랑 서막(위나라 사람으로, 지독한 애주가로 국법으로 금지한 밀주를 만들어 마셨다 함)과 친하였다. 서막이 조정에 나아가 말할 때마다 주에 대한 말이 입에서 떠나지 않자(진한 술을 조정에 가지고 들어가 늘 마셨다는 뜻), 마침 어떤 사람이 임금께 아뢰기를,

"서막이 주와 함께 사사로이 사귀어 점점 조정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 하므로 임금이 막을 불러 힐문(꾸짖어 물음)하니, 서막이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기를,

"신이 주를 따르는 것은 그가 성인(聖人)의 덕이 있삽기에 수시로 그 덕을 마시었습니다." / 하니 임금이 그를 책망하였다.

그 후에 진나라 세상이 되자, 주는 세상이 어지러울 줄을 알고 다시 벼슬할 뜻이 없어 유영 · 완적의 무리(중국 진나라 때의 이른 바 죽림 칠현들을 이름. 이들은 술을 즐기며 명리를 떠나 고상하고 우아한 이야기를 즐겼음)와 죽림에서 놀며 일생을 마쳤다.

* 국순의 아비 주(酎)의 행적

순은 기국(사람의 도량과 재간)과 도량이 크고 깊어, 출렁대고 넘실거림이 한없이 넓은 물결과 같아 맑게 해도 더 맑아지지 않고 뒤흔들어도 흐려지지 않으며(본래부터 아주 맑다는 의미), 자못 기운을 사람에게 더해 주었다. 일찍이 섭법사(돈을 의인화한 태평광기에 나오는 인물)에게 나아가 온종일 담론하였는데, 자리에 있던 사람 모두가 허리를 잡고 웃게 되어, 드디어 유명해져 호를 국처사(조용히 은거하며 사는 선비)라 하였다. 공경(높은 벼슬아치, 삼공과 구경) · 대부(벼슬살이를 하는 선비) · 신선 · 방사(신선의 술법을 닦는 사람)들로부터 머슴 · 목동 · 오랑캐 · 외국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 향기로운 이름을 맛보는 자는 모두 그를 흠모하였으며(세상 사람들이 모두 술을 즐겨 마셨음), 성대한 모임이 있을 때마다 순이 오지 아니하면 모두 다 서글퍼져 말하기를,

"국 처사가 없으면 즐겁지 않다."(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기 때문) / 하니, 그가 세상에서 사랑받음이 이와 같았다.

* 국순의 성품과 행적

태위 산도(죽림 칠현 중의 한 사람)가 감식(사물의 가치나 진위를 감정하여 식별함)이 있었는데, 어느 날 국 처사를 보고 말하기를,

"어떤 늙은 할미가 이런 갸륵한 아이를 낳았는고. 그러나 천하 백성들을 그르칠 자는 이놈일 것이다.(탁월한 감식안을 지닌 산도는 국순이 장차 간신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음.- 술로 인한 폐해를 예측한 말)" / 하였다. 관청에서 순을 불러 청주 종사(옛날 환온에 술을 잘 식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맛이 좋은 술은 '청주 종사'라 하고 나쁜 것은 '평원 독우'라 지칭했다고 함)로 삼았으나, 마땅한 벼슬 자리가 아니므로 다시 평원 독우(질이 안 좋은 술)를 시켰다. 얼마 뒤에 그가 탄식하기를,

"내가 쌀 닷 말 때문에 허리를 굽혀 향리 소아(시골 어린애. 인품이 보잘 것 없는 상급자를 비유한 말)에게 절한단 말이냐? 차라리 마을의 술자리에 가서 이야기하면서 노는 게 낫겠다." / 하였다. 그 때 관상을 잘 보는 자가 있었는데 그에게 말하기를,

"그대 얼굴이 자줏빛을 띠어, 뒤에 반드시 귀하게 되어 높은 벼슬을 누리게 될 것이니 마땅히 좋은 자리를 기다려 벼슬에 나아가라." / 하였다.

이윽고 진 후주 때에 그는 일반 백성의 아들로서 주객 원외랑이 되었다. 임금은 그 기국을 보고 남달리 여겨 장차 크게 쓸 뜻이 있어, 금구(쇠로 된 항아리)로 덮어 뽑아서(재상을 임명하는 일. 당나라 현종이 재상을 선정하여 그 이름을 책상 위에 써 놓고 금구(쇠로 된 항아리)로 가려 신하에게 맞히게 한 고사에서 유래됨) 당장에 벼슬을 올려 광록 대부 예빈경(외국인을 접대하기 위해 설치한 관아의 벼슬)으로 삼고, 벼슬을 올려 공(公)으로 하였다. 그리고 군신의 회의에는 반드시 순을 시켜 술을 따르게 하였는데, 그 진퇴와 수작이 조용히 뜻에 맞는지라, 위에서 깊이 받아들이고 이르기를,

"경이야말로 이른 바 곧고 맑은 사람이어서, 내 마음을 열어 주고 편안하게 하는 자로다."(술은 양면성이 있는데 술의 장점을 거론함) / 하였다.

* 국순의 정계 진출

순이 권세를 얻고 일을 맡게 되자, 어진이와 사귀고 손님을 대하는 일이며, 늙은이를 봉양하여 술 · 고기를 주는 일이며, 귀신에게 고사하고 종묘에 제사하는 일을 모두 순이 주장하였다.(제사를 지낼 때 제주로 쓰였음)

임금이 일찍이 밤에 잔치할 때도 오직 그와 궁인만이 모실 수 있었고, 아무리 근신(近臣)이라도 참예하지 못하였다. 이로부터 임금은 곤드레만드레 취하여 정사를 폐하는데도, 순은 입에 자갈을 물린 듯 말을 하지 못하므로(잘못을 고치도록 간언하지 않음) 예법의 선비들은 그를 미워함이 원수 같았으나, 임금이 매양 그를 보호하였다.

순은 또 돈을 거둬들여 재산 모으기를 좋아하니, 시론(한 시대의 여론)이 그를 더럽게 여겼다.

* 임금의 총애와 국순의 전횡

어느 날 임금이 묻기를,

"경은 무슨 버릇이 있느냐?" / 하니, 순이 대답하기를,

"옛날에 두예(중국 서진의 정치가)는 <좌전>(공자의 '춘추'를 노나라 좌구명이 해설한 책)을 좋아하는 버릇이 있었고, 왕제(진나라 사람으로 소시 때부터 글 재주가 있는 데다 용기와 힘이 뛰어났음)는 말(馬)을 좋아하는 버릇이 있었으며, 신(臣)은 돈을 좋아하는 버릇이 있나이다." / 하니, 임금이 크게 웃고 사랑함이 더욱 깊었다(신하의 잘못을 비호하여 국정을 문란하게 함).

* 국순의 재물욕과 임금의 비호

어느 날, 임금이 순과 더불어 술을 마실 때, 순의 입에서 냄새가 나므로 임금이 싫어하여 말하기를,

"경이 나이 늙고 기운이 없어 내 조정의 벼슬을 감당치 못하는가?" / 하였다(물러날 시기를 알지 못하고 나이가 늙고 기운이 없어질 때까지 분수에 넘치게 벼슬을 붙잡고 있다가 쫓겨나게 되는 국순을 풍자하고자 함). 임금이 신하들에게 명하여 부축하게 하여 집으로 돌려 보냈으나, 갑자기 병들어 하루 저녁에 죽었다.

아들은 없고, 족제(먼 친척 동생뻘 되는 남자) 청(淸)이 뒤에 당나라에 벼슬하여 내공봉(임금을 호위하고 따르는 직책)까지 지냈고, 자손이 다시 중국에서 번성하였다.

* 국순의 쫓겨남과 죽음

사신(역사를 기록하는 신하. 여기서는 '국순적'이라는 이야기를 쓴 사람 곧 작자가 자신의 직품에 대하여 내린 자평을 말함)은 이렇게 말하였다.

["국씨의 조상()이 백성에게 공로가 있었고, 청백(청렴 결백)을 자손에게 물려 주어 울창주(옛날 옛적 강신제 때 썼다는 술 이름)가 주나라에 있는 것과 같아 향기로운 덕이 하늘에까지 이르렀으니, 가히 제 할아버지(국순의 90대조인 모)의 기풍이 있다 하겠다. 순이 하찮은 들병의 지혜(손에 들고 다닐 만한 작은 병에 들어갈 정도의 작은 지혜)로 항아리 창(깨진 항아리의 입을 창으로 낼 정도로 가난한)을 낸 가난한 집안에서 일어나 일찍 금구의 뽑힘을 만나(재상이 되어), 담론하면서도 가부를 아뢰지 아니하고, 왕실이 어지러워져도 붙들지 못하여 마침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산도(山濤, 중국 진나라의 학자, 정치가)의 말이 족히 믿을 만하다."](술에 빠져 국정에 소홀한 당대 문사들과 임금의 총애를 받으면서 분수를 지키지 못해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든 간신배들을 풍자하고 있음)

* 국순에 대한 사신의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