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부인전(竹夫人傳)                       -이 곡-  

줄거리

부인의 성은 죽이요 이름은 빙이다. 위비 사람 운(왕대)의 딸이기도 하다. 그의 선대에 문적에 관한 훌륭한 일을 많이 했고, 특히 문인과 친교가 많았다. 또한 그의 선조가 음악에 조예가 깊어 상당한 우대를 받았는데, 악기로 사용한 제구가 바로 죽부인이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퉁소처럼 생긴 것이다.

죽씨는 대개 문(文)과 무(武) 두 줄기가 있다. 그 중에 당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익모의 딸과 결혼했다. 거기서 딸 하나를 낳았는데, 그녀가 바로 죽부인이다.

그녀는 처녀시절에 너무도 정숙했다. 이웃에 사는 의남이란 자가 음란한 노래를 지어 속마음을 떠보았으나 추호도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그자가 부끄럼만 당하고 말았다. 그녀는 차츰 자라서 송대부와 결혼했다. 송공은 부인보다 나이가 18세나 위였다. 그가 늦게 선유하러 곡성산에 가서 놀다가 돌로 화해 버렸다. 그리하여 부인은 혼자 살면서 가끔 시경의 위풍을 노래했다. 그녀의 만절(晩節)은 더욱 굳어서 모두가 그녀를 칭송해 마지 않았다. 그녀의 행실이 임금에게까지 알려져, 임금은 죽부인에게 절부(節婦)의 직함을 내린다.

이해 및 감상

이 작품은 세상 사람들을 훈계할 목적으로, 대나무를 의인화하여 굳은 절개를 지키며 살아가는 죽부인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일종의 열녀전으로, 그 당시 남녀관계가 문란했던 사회상을 풍자한 것이다. 죽씨의 조상은 큰 공을 세웠고 후손들은 재주가 뛰어났으며 절개가 굳어 세상의 칭송을 받았는데, 죽부인 역시 어진 부인으로 바르고 깨끗하게 어려움을 무릅쓰고 절개를 지키며 살아갔다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작자 이곡은 당시 음란한 궁중의 타락과 사회의 윤리 부재를 이 작품을 통해 나타냈으며, 죽부인을 당시의 이상적인 여인상으로 나타내려는 작자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마지막 단락에서 그는 사신의 입을 빌어 대나무의 성격(지조)을 강조하여 사물 하나하나에 연관성을 지어 조리있게 표현하였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유교적 가치관인 열(烈)을 주제로 하여 열녀 가문의 품위를 고양한 교훈적 내용의 가전체 문학이다. 이러한 가전체 문학이 조선조에 들어와 <춘향전>과 같은 열녀상을 낳게 한 원류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송나라 작품인 장뢰의 <죽부인전>의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추측이 된다.

요점 정리

작자 : 이곡

◆ 갈래 : 가전체

◆ 성격 : 전기적, 풍자적, 우의적, 교훈적, 유교적

제재 : 대나무

구성

* 도입 → 죽부인의 가계 소개

* 전개 → 죽부인의 고고한 성품, 송 대부와의 결혼, 죽부인의 절개

* 논평 → 죽부인에 대한 사씨의 평가

특성

* 문란한 당시의 사회상을 우회적인 수법으로 풍자, 비판함.

* 대에 얽힌 고사를 많이 도입하여 현학적인 분위기를 드러냄.

◆ 주제

* 죽부인의 절개 칭송

* 유교적 가치관에 의한 여인의 절개를 고취

◆ 의의

* 유교적 가치관인 '열(烈)과 절개'를 주제로 한 가전체

* 죽부인의 가계가 훌륭함을 서술한 것은 후대 고전 소설에서 주인공의 출생을 미화하는 수법과 유사함.

◆ 기타 : 송나라 장뢰의 '죽부인전'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 추측됨.

◆ 출전 : <동문선>

참고사항

◆ 지은이 : 이곡(1298~1351) 고려조 충렬왕에서 충정왕 때의 문신이다. 자는 중부요, 호는 가정이며, 시호는 문효이다. 이곡은 이색의 아버지로 문장에 능하여 중국인들에게까지 그 문명이 높았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행동거지가 비범하고 독서를 부지런히 하여 원나라 제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게 되었다.

문장이 뛰어난 그는 문학과 정치 활동이 왕성했으며, 모든 일에 게으르지 않아 이제현과 함께 편년강목을 증수하고, 충렬,충선,충숙 3조으 실록 편찬에도 참여했다. 한산 이씨인 그는 유교의 이념으로 현실문제에 적극적으로 대결하려 했으나 쇠망의 기색을 보인 고려에서 그의 이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의 시문집으로는 <가정집>이 있고, 가전체 소설로 <죽부인전>이 전한다. <동문선>에는 100여 편에 가까운 그의 시가 전하며, <죽부인전>은 <동문선>과 <가정집>에 수록되어 있다.

 

◆ 대나무의 속성과 인물 설정

대의 속성은 곧고 안은 텅 비어 있어 겸손하며, 또 마디가 있어 휠지언정 꺾이지 않기 때문에 정숙하고 절개 있는 여인의 상징물이 된 것이다. 또한, 겨울에도 그 잎이 시들지 않고 사시사철 같은 빛깔을 띠고 있기 때문에 소나무와 동일시하여 부부로 짝을 지은 것이다. 소나무와 대나무는 송죽이라는 하나의 단어를 이룰 만큼 동일시하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 관념이다.

죽부인은 남편 송공이 신선이 되어 돌아오지 않게 된 후에도 홀로 수절하고 살며 술을 잘 마셨다고 했다. 술을 거르는 도구인 용수가 대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런 대목을 넣은 것이 아닌가 한다. 뿐만 아니라, 술과 청빈은 은사의 속성이므로 말년의 은둔생활에 어울리는 표현을 이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작품 읽기

부인의 성은 죽(竹)이요, 이름은 (憑, 기대다, 의지하다)이다. 위빈 사람 (대나무의 일종으로 물가에서 나는데 키는 수십 자며 둘레가 한 자 혹은 두 자로 대나무 중에서 가장 큰 것임)의 딸이다. 계통은 창랑씨(난 지 얼마 안 되는 작은 대나무)에서 시작한다. 그 조상이 음률을 해득했기에 황제가 그를 뽑아서 음악의 일을 맡아 다스리게 했다. 우나라 때의 (簫, 죽관을 나란히 묶어서 만든 취주 악기의 하나. 퉁소) 역시 그의 후손이다.

* 죽부인의 성명과 가계(家繼)

처음에 창랑은 곤륜산 남쪽으로부터 동쪽으로 옮겨와서 복희씨(중국 고대 임금의 한 사람) 때에 위씨(책을 맨 가죽 끈을 말함)와 함께 문적에 관한 일을 맡아 보아 큰 공을 세웠다. 그래서 자손 대대로 모두 사관의 자리를 맡아 왔다(종이를 쓰기 이전에 대나무의 조각을 가죽으로 엮어서 '죽간'을 사용하였음을 뜻함).

포악한 정사를 펼친 진나라는 이사(진시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고 군현제를 실시한 사람)의 계획을 받아들여 모든 책들을 불사르고 선비들을 묻어 죽이자(분서갱유), 창랑의 자손들은 점점 한미(구차하고 지체가 변변치 못함)해졌다. 한나라 때에 와서는 채륜(후한 때 사람으로 처음으로 종이를 만들었다고 함)의 문객 저생(종이의 별칭. 저'는 닥나무를 가리킴)이란 자가 글을 배워서 붓을 가지고 때때로 죽씨와 함께 놀았다. 하지만 그 위인은 경박하고 남 헐뜯기를 좋아하여, 죽씨의 그 강직한 모습을 보고 몰래 헐뜯다가 마침내 죽씨의 소임까지 빼앗아 갔다(종이의 발명으로 대나무 조각에 역사를 기록하지 않게 된 사실을 말함).

* '죽'의 성쇠

주(周)나라 때는 (竿, 대의 줄기, 낚싯대)이 있었으니, 또한 역시 죽씨의 후손이다. 태공망(강태공)과 더불어 위수 가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데 태공이 갈퀴(대나 철사를 부챗살 모양으로 엮어 만든 기구)를 만들었다. 간(竿)이,

"내가 들으니 훌륭한 낚시꾼은 갈퀴를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낚시꾼의 크고 작음은 곡직(曲直)에 있으니, 곧은 것은 나라를 낚을 것이요, 굽은 것은 고기를 얻는 데 불과할 것입니다." / 라고 하였다. 태공이 그의 말을 좇아 뒤에 과연 문왕의 스승이 되어 제(濟)에 봉해졌고, 간의 어짊을 천거하여 위수 가에 식읍(공로에 대한 특별 보상으로 주는 토지)을 마련해 주니 이것이 죽씨가 위수 가에 살게 된 유래이다.

* 죽씨의 후손 간(竿)과 태공망의 예화

<중략> : 지금도 죽씨의 자손은 수없이 많이 있는데 임, 어, 군, 정이 그들이다. 그 자손 중에서 양주로 옮겨간 자들이 있다. 이들을 조, 탕이라 하며 또 오랑캐 땅으로 들어간 자는 봉이라 한다.

 

운의 대에 이르러 숨어 살고 나아가 벼슬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아우가 하나 있었다. 이름을 (운과 같은 왕대나무)이라고 했다. 형과 이름을 가지런히 하여 가운데를 비우고 곧게 자랐다. 특히 그는 왕자유(왕희지의 다섯째 아들로, 그는 대를 차군(此君)이라 했다)와 친하게 지냈다.

어느 날 자유가 말했다.

"하루도 그대(차군) 없이는 살 수가 없다."(하루도 붓글씨를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었음을 뜻함)

이로부터 그의 호를 차군이라고 불렀다. 대체로 자유는 단정한 사람으로서 벗을 취하는 데에도 반드시 단정한 사람을 취했다. 그러니 그의 사람됨을 알 만하다.

* 죽씨의 후손 '당'과 '왕자유'의 예화

당은 익모(益母, 익모초)의 딸과 혼인하여 딸 하나를 낳았으니, 이가 바로 죽부인이다.(구성상 모순되는 부분임. 시작 부분의 내용과 모순됨) 죽부인이 처녀로 있을 때 정숙한 자태가 있었다. 그 이웃에 사는 의남(宜男)이란 자가 음란한 노래를 지어 속마음을 떠 보니, 부인이 노하여,

"남녀가 비록 다르지만 그 절개는 하나밖에 없다. 한 번 사람에게 절개를 꺾이게 되면 어찌 다시 세상에 설 수 있겠는가?" / 라고 말하니 의남은 부끄러워 달아났다. 그러니 어찌 소나 끄는 사람(속된 무리들을 비유한 말)이 엿볼 수 있으랴.

* 죽부인의 품행① - 절개

차츰 자라서 송대부(소나무의 의인화)가 예로써 청혼하니 그 부모가,

"송공은 참으로 군자다. 그의 평소의 지조와 행동을 보건대 우리 집과 짝이 될 만하다."(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송죽을 아울러 이르는 것에서 나온 말) / 하면서 마침내 그와 혼인시켰다.

이로부터 부인의 성질은 날로 더욱 굳고 두터워져서, 일을 분별하는 데 있어서 그 민첩함이 마치 칼날로 쪼갠 것과 같으며(대쪽), 비록 매선(梅仙, 매화를 신선에 비유)의 믿음이나 이씨(李氏, 자두의 의인화)의 말없음도 일찍이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으니, 하물며 귤로(橘老, 늙은 귤)나 행자(杏子, 살구나무)에 있어서랴. 혹 안개 낀 아침이나 달 밝은 저녁이 되어 바람을 읊고 비를 노래할 때(풍류를 즐김)에는 그 말쑥한 자태를 무엇으로 형용하기 어려워 호사가(일을 벌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슬그머니 그 얼굴을 그려 전하면서 보배로 삼으니, 문여가(文與可)나 소자첨(蘇子瞻) 같은 이들(문동이나 소식, 대나무를 좋아하고 대나무를 잘 그렸던 북송의 사람들)이 더욱 그것을 좋아했다.

* 죽부인의 품행② - 명철, 신의, 고상함

송공(松公)은 부인보다 18세나 위였다. 늦게 신선술을 배워서 곡성산에 가서 놀다가 돌로 화해 버려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남편과 사별함) 이로부터 부인은 혼자 살면서 가끔 <시경>의 위풍(시경에 실린 시가 형식의 하나)을 노래하니 자연 마음이 흔들려 혼자서 지탱해 나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원래 술 마시기를 좋아했다. 역사의 기록에 그 연대는 없으나 어느 해인가 5월 13일에 청분산으로 집을 옮겨 살다가 술에 취하여 고갈병(몸이 마르는 병)에 걸렸는데 고치지 못했다. 병을 얻은 후에는 항상 사람에게 의지해서 살았다. 그녀의 만절(늦게까지 지키는 절개)은 더욱 굳어서 온 시골에서 모두 그녀를 칭찬해 마지 않았다. 그녀는 또 삼방 절도사 유균(화살대, 원래 균은 조릿대로서 대나무 중에서 가늘고 작아 화살대를 만들기에 알맞은 것을 말함)의 부인과 같이 살았다. 그녀의 행실이 임금에게까지 알려져 임금은 절부의 직함을 내렸다.

* 죽부인의 품행③ - 음주, 절부

사씨(史氏)는 말한다.(가전의 특징-작가의 논평)

죽씨의 조상은 상고 시대에 큰 공을 세웠고, 또 그 자손들은 모두 재주가 있고 절개가 굳어서 세상의 칭찬을 받았다. 그러니 죽부인이야말로 어질다 하겠다. 아! 이미 군자(소나무)를 짝하고 남의 의지함이 되고도 마침내 후사(대를 잇는 아들)가 없으니, 하늘이 무지하다 함이 어찌 헛된 말이랴.

* 죽부인에 대한 사씨의 평(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