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문

1.

중국 고대 철학에서 가장 활발한 논쟁은 바로 인성론과 관련된 것이었다. 성선을 주장했던 맹자가 인성과 관련된 논쟁에서 한쪽 측면을 맡고 있다면, 성악을 주장했던 순자는 그 반대쪽에 서 있었다. 그런데 맹자와 순자가 중심이 되어 전개한 다양한 인성론 논쟁은 순수한 철학적 논쟁이 아니라 정치 철학적 함의를 크게 지닌 것이었다.

2.

맹자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고, 이 선한 본성의 실현은 주체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충분히 가능하다. 즉, 맹자는 인간을 타인의 힘이 아닌 자력에 의해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는 근거와 능력이 있는 존재로 본 것이다. 이에 따라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한 마음을 내면에 갖추고 있으며, 자기의 행동이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이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 이러한 마음이 의롭지 못한 행동을 막아 준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맹자의 생각은 현실 사회에서 국가 공권력과 사회 규범의 역할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논거로 사용되어 후에 왕권에 저항하는 지식인들의 저항 논리로도 사용되었다. 선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인간은 국가 질서, 학문, 관습 등과 같은 외적인 것에 기댈 필요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 문제의식을 갖고 맹자를 비판했던 인물이 바로 순자였다.

3.

순자는 올바르고 질서 있고 공평하고 다스려진 것을 선(善)으로, 치우치고 음험하고 어긋나고 혼란스러운 것을 악(惡)으로 보고, 사람의 본성이 결코 선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전제하고 그것을 고치고 길들일 수 있는 외적 강제력, 다시 말해 국가 권력이나 전통적인 예의와 전장법도(典章法度)*들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순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맹자의 성선설은 사변적이고 낙관적일 뿐만 아니라 현실 감각이 빠져 있는 주장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래서 순자는 만약 사람의 본성이 진실로 올바르고 질서 있고 공평하고 다스려진 것이라면 성왕(聖王)과 예의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맹자를 비판하였다.

4.

이러한 순자의 생각은 현실주의적인 인간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 욕망은 무한하지만 그것을 채워 줄 재화는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이렇게 서로 다투다 보면 사회가 혼란해지고 재화가 바닥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왕은 예의를 제정하여 사람마다 분수를 정하고 이 분수에 따라 사람의 욕망을 정도에 맞게 길러 주어 욕망 때문에 재화가 바닥나는 일이 없게 했는데, 이것이 예(禮)의 기원이라고 보았다. 맹자의 성선설이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질서를 해칠 가능성이 있다고 본 순자의 비판은 바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와 같은 그의 견해로부터 가능했던 것이다.

5.

그런데 통일된 대제국인 한(漢)나라에 들어서면서 맹자의 유학이 중심적인 이데올로기로 채택되었다. 현실 감각을 갖춘 사유보다 이상적인 맹자의 사상이 거대한 제국을 정치적으로 치장할 수 있는 사상으로 더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로써 순자의 유학은 맹자에 비해 저급한 사유 혹은 이단적인 사유라는 생각으로 사람들에게 자리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통일 국가가 세워지기 전인 전국 시대에는 순자에 대한 평판이 맹자를 압도했었다. 당시처럼 혼란할 때는 맹자와 같은 이상주의적인 사유보다는 탁월한 현실 감각을 갖춘 순자의 현실적인 사유가 더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순자의 사상에 다시 주목하게 되는 것 또한 이러한 현실주의적인 감각 때문일 것이다.

◆ 2015년 5월 사설 모의고사(중앙), 국어B 독서 영역 ‘인문’지문

◆ 개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