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회

1.

몇 해 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세계 각국은 천문학적인 규모로 통화량을 늘렸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돈을 풀었음에도 물가가 비교적 안정되었고, 미국과 일본 등 몇몇 국가는 오히려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을 걱정하였다. 돈이 많이 풀렸는데 물가가 안 오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많이 풀렸는데도 물가가 오르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2.

통화와 물가의 관계를 이해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쉬운 예를 들어 보자. 10만 원짜리 물건이 10개 거래된다면, 총 지출액은 가격(10만 원)과 거래량(10개)을 곱해 100만 원이 된다. 이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성립하는 등식이다. 여기에서 가격(P)과 거래량(T)을 곱한 것은 전체 경제에서 보면 통화량(M)과 화폐 유통 속도(V)를 곱한 것과 같다. PT = MV.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화폐 교환 방정식'이다. 화폐 유통 속도란 돈이 한 해 동안 얼마나 빨리 사람들의 손으로 돌아다니는가를 나타낸다. 경기가 활성화되면 거래가 많아져서 유통 속도가 빨라진다.

3.

실제로 이 공식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게 상당히 많다. 먼저 전체 경제에서 거래되는 물량이 같고, 사람들의 지출 형태에 큰 변화가 없어 화폐의 유통 속도도 동일한 상태라고 가정하자. 이때 통화량이 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방정식에서 등호가 성립하려면 당연히 가격이 통화량에 비례해서 올라야 할 것이다. 그런데 통화량은 늘었지만 유통 속도가 떨어져서 통화량과 유통 속도를 곱한 값(MV의 값)이 이전과 동일하거나 작아진다면 통화량이 늘어도 가격은 오르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돈이 풀렸는데도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화폐의 유통 속도가 떨어지는데 유동성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면, 바꿔 말하면 경기가 나쁜데 돈을 풀지 않으면 국내 총생산이 급감하게 된다. 왜냐 하면 시장의 거래량은 결국 생산량과 같은 개념이고, 가격에다 생산량을 곱하면 국내 총생산(GDP)이 되기 때문이다.

4.

통화량 증가가 당장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정책 효과의 시차 때문이다. 통화량을 증가시킨다고 오늘 물가가 바로 오르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통화량이 증가하면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에 그 효과가 나타난다. 경기 부양이나 물가 인상의 효과 모두 상당한 시차를 갖고 나타나는 것이다.

5.

이러한 정책 효과의 시차는 환율 정책에서도 나타난다. 정부에서 무역 수지를 개선하기 위해 환율을 끌어올리더라도 초기에는 무역 수지가 더 악화되다가 일정한 기간이 경과한 뒤에야 무역 수지가 개선된다. 환율 상승 초기에는 그 이전의 환율을 기준으로 맺은 계약에 의해 수출이 이루어지게 됨에 따라 수출 물량에 큰 변동이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기간이 경과된 후에는 변화된 환율에 의해 수출입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 달라지고, 이에 맞추어 수출입 물량의 조정이 이루어져 무역 수지가 개선된다. 환율 변동에 따른 무역 수지의 변동 양상은 영문자 J 모양과 흡사하여 'J 커브 효과'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환율이 상승할 경우 무역 수지가 초기 약 6개월 동안에는 악화되다가 조금씩 회복되어 약 15개월이 지나면 흑자로 돌아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2014년 3월 사설 모의고사(대성), 국어A 독서 영역 '사회' 지문

◆ 개요 : 정갑영, 『화폐 교환 방정식』→ 이 글은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돈이 많이 풀렸는데도 물가가 오르지 않았던 이유를 통화와 물가의 관계, 정책 효과의 시차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