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인간이 이룩한 현대 과학 기술 문명은 인간의 지적 · 육체적 능력을 거의 무한 대로 확장시킴으로써 인간의 삶과 세계를 크게 변화시켰다. 특히, 모든 분야에서의 빠른 속도는 현대 문명의 가장 큰 업적이자 특징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이러한 속도는 현대 문명의 위력을 증명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현대 문명의 어리석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제기해 볼 수 있다. 문명의 이기 덕분에 작업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면, 우리 삶에서 노동 시간은 그만큼 짧아졌는가? 또한, 자동차나 비행기 덕분에 우리 삶에서 이동 시간은 얼마나 줄었는가? 현대 문명은 모든 면에서 시간을 엄청나게 단축시켰지만, 왜 현대인들은 시간에 더욱 쫓기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 이반 일리치라는 학자가 흥미로운 분석을 한 바 있다. 그는 미개사회와 문명사회의 사람들이 이동에 소비하는 시간을 분석하였다. 미개인들은 대략 시속 4.5km로 이동하며, 이동에 소비하는 시간은 하루 활동 시간의 5% 정도였다. 이에 비해 문명인들은 하루 활동 시간 중 22%를 이동하는 데 소비하고, 차까지 걸어가는 시간, 차 안에 앉아 있는 시간 등을 모두 포함하면 대략 시속 6km로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본다면 문명인들은 미개인들보다 시간당 겨우 1.5km 속도로 더 빨리 움직일 뿐인 반면, 이동하는 데 무려 4배 이상의 시간을 더 소비하는 셈이다. 자동차와 비행기 등을 만들어 빨리 이동한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걸어 다니는 미개인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문명인들의 삶이다.

이반 일리치의 분석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출퇴근에 하루 1~2 시간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교통수단이 발달하기 전에는 일터를 오가는 데 1~2 시간을 소비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컴퓨터가 작업 속도를 크게 줄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노동 시간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 이남호, <문명에 쫓기는 인간>에서

◆ 2013학년도 8월 사설모의고사(비상) 국어 A

◆ 현대 문명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빠른 속도에 대해 짚어 보면서, 현대 문명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한 글이다. 현대 문명은 모든 면에서 시간을 엄청나게 단축시켰지만, 현대인들은 시간에 더욱 쫓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