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술

르네 마그리트는 '유사의 원리'에 따른 재현 회화를 파괴하고, 상사의 놀이를 지향한다. '유사(類似)'와 '상사(相似)'는 둘 다 '비슷하다'는 뜻을 갖는 낱말이나, 실은 명확히 구별되는 개념이다. 유사의 관계에는 원본과 복제 사이에 위계 질서가 있다. 반면 상사의 관계에는 그런 위계 질서가 없다. 유사의 원리가 포기되면 남는 것은 상사의 놀이뿐이다. 유사의 원리는 원본과 복제의 '동일성'에 집착하나, 상사는 그 집착에서 벗어나 복제들 사이의 차이를 전개시킨다. 마그리트 작품 속의 형상은 유사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가방을 닮은 형상이 가방을 지시하지 못하고, 나뭇잎을 닮은 형상이 나뭇잎을 가리키지 못한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유사'로서 실물을 지시하는 대신에, 그 수직적 의무에서 풀려나 마음껏 '상사'의 수평적 놀이를 즐긴다.

마그리트의 상사 놀이는 곧 원본 없는 복제, 즉 시뮬라크르들의 놀이다. 그 점에서 마그리트의 작업은 미국의 현대 미술가 앤디 워홀과 상통하는 데가 있다. 워홀의 작업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시뮬라크르의 창조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가 실물을 복제한 사진을 다시 복제하는 식으로 작업을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필름을 화폭 위에 영사해 놓고, 그는 연필로 그 이미지의 윤곽을 뜬 후에 거기에 채색을 하여 작품을 얻어 낸다. 한마디로 복제의 복제, 시뮬라크르를 생산하는 것이다.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연작을 보자. 이 작품의 핵심은 저 유명한 대중문화의 우상을 얼마나 닮았느냐에 있는 게 아니다. 그가 노리는 것은 유사의 진리가 아닌 상사의 진리, 즉 미세한 뉘앙스의 차이를 내며, 동일한 이미지를 여러 번 반복할 때 얻어지는 어떤 시각적 효과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원본 없는 복제, 원본과는 일치가 필요 없는 복제, 즉 시뮬라크르의 놀이가 되는 셈이다.

과거의 예술가들이 원작을 생산했다면, 워홀은 자신의 작품이 하나의 코드로 찍어 낸 대량 소비 사회의 복제물들과 같아지기를 바랐다. 현대 사회는 기계를 통해 무수히 많은 복제품들이 상품이란 이름으로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대량 소비 사회이다. 워홀은 그러한 시대적 특성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작품에서도 기계로 찍어 내듯이 복제물들을 만들어 냈다. 과거의 예술가들이 '유사의 원리'로 자연의 거울이 되려고 했다면, 워홀은 '상사의 놀이'로 현대적 지각의 특성을 드러내려 한 것이다.

◆ 2013년 5월 사설모의고사(중앙유웨이), 국어B 독서 영역 '과학' 지문

◆ 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