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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많은 대상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을 각기 차이가 나는 대상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이들 사이의 공통점에 주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바위와 관목과 참나무는 각기 다른 세 가지 대상이다. 하지만 관목과 참나무 사이에는 바위와는 다른 어떤 공통점이 있다. 즉, 관목과 참나무는 바위와 달리 '나무'라는 공통적 성질을 갖는데, 이러한 공통적 성질을 '보편자(universal)'라고 부르고, '관목'과 '참나무'와 같이 보편자를 예로서 드러낸 개별적 사물을 '개별자(particular)'라고 부른다.

동일성과 차이성을 설명하기 위한 보편자와 개별자의 도식은 성질에 제한되지 않고, 관계나 명제에까지 확대된다. 철수가 영희를 사랑하지만, 정희를 사랑하지는 않는다고 하자. 이때 양자의 차이를 설명하는 방법은 철수와 영희는 보편자로서의 '사랑함'이라는 관계를 예화(例話)하지만, 철수와 정희는 그러한 관계를 예화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명제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보편자에 대한 철학적 견해는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 보편자에 관하여 가장 크게 대립하는 견해는 실재론(실재론, realism)과 유명론(유명론, nominalism)이다. 문자 그대로, 보편자에 대한 실재론은 성질, 관계, 명제가 실재한다는 견해이며, 유명론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개별자들뿐이고 보편자는 이름에 불과하다는 견해이다. 특히 보편자에 대한 실재론은 보편자를 어떤 존재로 보는가에 따라 플라톤주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개념주의의 세 관점으로 구분된다.

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모두 보편자가 우리의 정신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반면 개념주의는 보편자가 정신의 산물이라고 믿는다. 개념주의자에 따르면 정신의 주체로서의 인간이 모두 사라진다면 보편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 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정신의 모든 주체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보편자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보편자의 실재를 받아들이는 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어떤 점에서 구분되는가? 양자는 보편자와 개별자의 관계를 서로 다르게 이해한다. 플라톤은 보편자를 초월적 존재자로 이해한다. 플라톤은, 보편자는 그를 예화하는 개별자들의 존재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그의 보편자 모델이 수학에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원에 대한 기하학적인 참은 실제로 완전하게 원형인 개별적인 원들의 존재에 의존할 수 없다. 그러한 완벽한 원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하학이 드러내는 진리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개별적인 도형들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세계에 불변으로 존재하는 이상적 원에 의존한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자는 내재적인 존재자로 이해한다. 보편자를 예화하는 개별자들이 없으면 보편자도 있을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러한 견해를 취한 이유는 그가 생물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의 보편자 개념은 생물을 구분하는 유(類)와 종(種) 등의 개념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생물체의 종은 그를 예화하는 동물들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이 모델에 따라 보편자를 이해함으로써 보편자는 그를 예화하는 개별자들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 2013년 5월 사설모의고사(중앙 유웨이), 국어B 독서 영역 '인문' 지문

◆ 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