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문

중국 명나라 때의 유학은 송나라 때 주희에 의해 체계가 잡힌 주자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명나라 중기에 학자이자 무인이었던 왕양명이 등장하면서 중국 유학의 역사는 양명학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낳았다.

왕양명은 사람은 누구나 배우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지혜와 익히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다고 믿었다. 전자는 '양지(良知)', 후자는 '양능(良能)'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치양지(致良知)', 즉 양지의 실현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보면, 양지와 양능이 천부적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반드시 경전을 먼저 학습해야만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왕양명에게는 경전 공부보다 마음공부가 우선이었다.

『대학(大學)』의 '격물(격물)'에 대한 해석을 보면 왕양명의 진면목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일찍이 주희는 격물의 해석에 공을 들였다. 그는 '격'을 '나아가다 · 이르다[至]'로, '물'을 주관과는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로 보아, '치지(致知)' 즉 앎을 이루기 위해서 외재하는 사물로 나아가는 것이 격물의 참뜻이라고 했다. 이는 경전을 통해 학습한 도리를 개개 사물의 차원에서 재확인하는 작업이었기에, 그에게 있어서 학문의 시작은 일관되게 경전의 학습이었다. 반면에 왕양명은 격물을 '외재하는 사물을 바로잡다'라고 푼 후, 그 참뜻은 마음에 그것들을 '존재하는 그대로' 포착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주희의 해석과는 두 가지 점에서 분명하게 달랐다. 먼저 '물'의 경우, 왕양명은 이를 인식 주체인 '나'와 격절돼 있는 객관 사물이 아니라 '나'의 마음과 연계된 객관 사물로 보았다. 그리고 '격'은 주희와 달리 '바로잡다[正]'라는 의미로 풀었다. 이 바로잡음의 대상은 외재하는 객관 사물의 온전한 인식을 방해하는 '나'의 비뚤어진 마음이었다. 이렇게 되면 격물은 곧 '정심(正心)'이 된다. 그리하여 왕양명에게 있어서 학문의 시발점은 언제나 정심, 즉 마음공부였다.

왕양명이 내세운 마음공부는 현실의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실천적 과제이기도 했다. 실제로 왕양명의 삶의 주희의 삶과는 매우 달랐다. 생애의 대부분을 학문에 전념했던 주희와는 달리, 왕양명은 무인으로서 긴 세월 동안 전쟁터를 누빈 인물이었다. 그에게 전장은 양지를 실현하는 삶터였다. 전장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데서 마주하는 모든 일이 그에게는 공부였다. 이를 통해 하늘이 부여한 양지와 양능을 회복할 수 있었으니, 일을 하며 공부했다는 그의 회고는 결코 헛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왕양명의 삶을 주도한 정신은 마음의 온전한 정립이었다. 주희처럼 경전에 담겨 있는 도리를 온전히 깨닫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이었다. 그의 궁극적인 관심사는 하늘이 사람의 마음에 부여한 선(善)함을 확충시켜 나가 현실에서 그 선을 이루는 데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경전 공부를 도외시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생각한 양지와 양능은 가만히 있어도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가려지고 망각될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경전의 학습은 양명학에서도 중요하게 받아들여졌다. 경전의 학습을 통해 '나'가 각성돼 마음공부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경전에는 양지와 양능을 온전히 발휘했던 성현의 생각과 행적이 담겨 있기에, 그것은 '나'가 행한 마음공부를 점검할 수 있는 미더운 길의 하나였다.

◆ 2013년 5월 사설모의고사(중앙), 국어A 독서 영역 '인문' 지문

◆ 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