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문

'몰입(沒入)'은 삶의 고조되는 순간에 물 흐르듯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느낌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것은 운동 선수가 말하는 '물아일체의 상태', 신비주의자가 말하는 '무아경', 화가와 음악가가 말하는 '미적 황홀경'에 해당한다. 운동선수, 신비주의자, 예술가는 각각 다른 활동을 하면서 몰입 상태에 도달하지만, 그들이 그 순간의 경험을 묘사하는 방식은 놀라우리만큼 비슷하다.

우리는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는 일련의 명확한 목표가 앞에 있을 때, 몰입할 가능성이 높다. 체스나 테니스 같은 게임을 할 때 몰입하기 쉬운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선수는 모든 것이 흑백으로 선명하게 표현된 소우주 안에 있다. 종교 의식에 참여하거나 음악을 연주하거나 수술을 할 때도 목표가 주어진다. 몰입을 유발하는 활동을 '몰입 활동'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일상생활과는 달리 몰입 활동은 명확하고 모순되지 않은 목표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해 준다.

몰입 활동의 또 하나의 특징은 되먹임, 곧 피드백의 효과가 빨리 나타난다는 것이다. 몰입 활동은 작업이 얼마나 순조롭게 이루어지는지를 빨리 알 수 있게 해 준다. 등반가는 걸음을 한 보 내디딜 때마다 그만큼 높이 올라섰다는 것을 안다. 성악가는 노래의 한 소절이 끝날 때마다 자기가 부른 노래가 악보와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알 수 있다. 외과의는 칼이 동맥을 잘 피했는지 아니면 갑자기 출혈이 시작되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우리는 단서가 주어지지 않으면 지금 하는 일이 잘되는지 잘못되는지 한참을 모르고 지낼 때가 많지만 몰입 상태에서는 대체로 그것을 바로 알 수 있다.

몰입은,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버겁지도 않은 과제를 극복하기 위해 한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온통 쏟아 부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실력과 과제 사이에 조화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바람직한 경험을 하게 된다. 과제가 너무 힘겨우면 사람은 불안과 두려움에 젖다가 제풀에 포기하고 만다. 과제와 실력의 수준이 둘다 낮으면 아무리 경험을 해도 미지근할 뿐이다. 그러나 힘겨운 과제가 수준 높은 실력과 결합하면 일상생활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심도 있는 참여와 몰입이 이루어진다. 등반가라면 산에 오르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짜내야 할 때, 성악가라면 높고 낮은 성부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어야 하는 까다로운 노래를 불러야 할 때, 외과의라면 순발력 있는 대응을 요구하는 수술이나 새로운 기법을 도입한 수술을 할 때, 바로 그런 경험을 한다. 보통 사람은 하루가 불안과 권태로 가득하지만 몰입 경험은 이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는 강렬한 삶을 선사한다.

목표가 명확하고 활동 결과가 바로 나타나며 과제와 실력이 균형을 이루면 사람은 정신을 체계적으로 집중할 수 있다. 몰입은 정신력을 모조리 요구하므로 몰입 상태에 빠진 사람은 완전히 몰두한다. 잡념이나 불필요한 감정이 끼어들 가능성은 티끌만큼도 없다. 자의식은 사라지지만 자신감은 평소보다 커진다. 시간 감각에도 변화가 온다. 한 시간이 일 분처럼 흘러간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여한없이 쓸 때 사람은 어떤 일을 하고 있건 일 자체에서 가치를 발견한다. 삶은 스스로 정당화하게 된다. 체력과 정신력이 조화롭게 집중될 때 삶은 마침내 제 스스로 힘을 얻게 된다.

◆ 2013년 3월 사설모의고사(대성), 국어B 독서 영역 ‘인문' 지문

◆ 개요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의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