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문(역사)

19세기 근대 역사주의를 주창한 랑케는 과학적 학문으로서 역사학의 기초를 닦았다. 그는 과거 사실은 역사가의 마음 밖에 존재하며, 과거 사실에 대해 연구자가 어떻게 생각하든 과거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과거의 '사실(fact)'이 엄연히 존재하므로, 역사가는 과거 사실이 기록된 문서를 객관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당시의 상황을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콜링우드는 "역사는 사고의 한 형태"라고 반박하였다. 즉, 역사란 역사가가 사료를 읽으면서 과거 사실을 자신의 사고 속으로 끌고 온 것이다. 역사가의 사고 속으로 들어오지 않은 과거 사실은 역사가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게 된다. 설령 사료에 언급되어 있더라도 그 사료를 역사가가 읽지 않으면 그것은 과거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역사가는 사료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과거를 추체험(追體驗)*하기도 한다. 가령, 콘스탄티누스 1세의 '밀라노 칙령'의 역사적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콘스탄티누스가 맞닥뜨렸던 상황과 그것을 타개하려고 했던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이처럼 역사가는 콘스탄티누스의 경험을 자기 사고 속으로 끌고 들어와야만 역사적 사실의 문헌학적 의미를 넘어서 역사적 의미를 알게 된다. 이러한 추체험의 노력은 일종의 공감적 이해로, 역사가가 자신이 과거 사건의 주인공인 것처럼 그들의 경험을 공감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공감적 이해를 시도하려는 사람이 사건의 주인공과 전혀 다른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를테면 한 번도 바다를 직접 보지 못한 사람과 바다에 거의 빠져 죽을 뻔한 사람에게 '바다'라는 말에서 떠오르는 이미지와 느낌, 정서 등은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 사실을 알고자 하는 역사가는 아무리 중립적인 마음과 자세를 갖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경험과 그로 인한 인식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

결국 과거 사실이 아무리 객관적이고 절대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현재 역사가의 정신 상태 속에서 이해되며 역사가의 현재 관심사와 상황에 귀착된다. 이런 점에서 모든 역사는 '현재사'의 성격을 갖는다. 과거 사실이 아무리 오래된 것이라 하더라도, 오늘 현재에 살고 있는 역사가의 관심과 상황에 따라 재구성되는 것이다. 연산군의 포악한 정치를 연산군 개인의 모성애 결핍 콤플렉스로 강조할 수도 있고, 연산군의 왕권 신장 의지로 강조할 수도 있다. 역사가는 자신들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위해 각자의 주장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사료들을 선택하고 배열하는 것이다.

이 같은 과정 속에서 역사가들은 투명한 거울일 수 없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선택과 배열은 항상 역사가의 자아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역사 연구에서 랑케의 주장처럼 자아를 소거하는 것은 하나의 이상일 뿐, 실제로 역사를 서술하면서 역사가의 자아를 없앨 수는 없다. 역사 연구란 과거 사실이 역사가의 마음으로 들어올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추체험 : 다른 사람의 체험을 자기의 체험처럼 느낌. 또는 이전 체험을 다시 체험하는 것처럼 느낌.

◆ 2013년 10월 사설모의고사(중앙), 국어B 독서 영역 '인문' 지문

◆ 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