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의 집(19)                                                  -하근찬-

 

 

 

국내 사진 콘테스트에 두어 차례 입선한 일이 있는 친구 P 군한테 놀러 갔다가 책 한 권을 빌려 가지고 왔다. <국제 명작 사진첩>이라는, 뉴욕 무슨 신문사에서 발간한 책이었다. 예술 사진을 전공하는 친구라 사진에 관한 책이 많았다. 책꽂이에서 아무거나 한 권 뽑아 펼쳐 보다가 꽤 재미있는 것이 있어서 좀 차근차근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 사진책을 보자, 나보다도 국민학교 2학년짜리 영일이가 더 좋아했다. 엎드려서 책을 펼쳐 보고 있는 내 곁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이 책 사 온 거예요? 아버지."
묻는다.

"아니."

"그럼?"

"빌려 온 거야."

"야! 이 자식, 깡통하고 꽃하고 들고 있다!"

'알제리아의 소년'이라는 제목의 사진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중동 아시아나 북아프카 사막 지대에 흔히 있는 소도시의 뒷골목, 그 비뚜름하고 희끄무레한 담벼락에 남루한 옷을 걸친 소년이 한 손에는 불란서 문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는 깡통을 들고, 한 손에는 하얀 꽃을 한 송이 들고 기대서 있는 사진이었다. 영일이가 '야! 이 자식' 하고 두 눈을 반짝거린 것처럼 나에게도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사진이었다.

나는 단순한 미적 감각만을 앞세우고 찍은 사진은 별로 높이 사지 않는다. 물론 미의식이 결여되어서는 작품이 되질 않지만, 그것과 함께 현실을 보는 눈이랄지, 인생과 역사를 생각하는 마음 같은 것이 잘 작용해 있지 않으면 깊은 맛이 우러나질 않는 것이다.

깡통과 꽃을 든 소년의 사진을 넘기자, 그 다음 역시 알제리를 소재로 한 '식민지의 봄'이라는 제목이 붙은 것인데, 두 눈이 움푹 꺼져 들어간 젊은이가 쩍 벌어진 어깨에 소총을 둘러메고 서 있는 모습을 상반신만 크게 클로즈업시킨 것이었다. 푹 눌러쓴 전투모는 낡을 대로 낡았고, 허리에 두르고 있는 탄띠에는 총알이 서너 개 꽂혀 있을 뿐이었다. 피로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움푹 꺼져 들어간 눈자위 속에서 두 눈은 살아서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알제리의 독립 운동 단체인 FLN(알제리 민족 해방 전선. 알제리가 프랑스의 식민지였을 때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독립 후에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지도하는 역할을 함)의 유격대원쯤 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 사진이 어찌 '봄'이 되는 것일까?

자세히 보니, 젊은이의 어깻죽지에 조그만 나비가 한 마리 붙어 있는 것이었다. 흠,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식민지의 봄이라……."
하고 중얼거렸다.

영일이도 나비를 발견하자,

"총도 안 무서원가 봐, 이 나비."

손가락으로 쓱 문질러 보는 것이었다.

그 밖에도 재미있는 사진들이 많았다.

고양이의 다친 꼬리를 붕대로 조심스럽게 감고 있는 의사와 간호부, 그 곁에서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노파의 사진. 보석으로 엮어 만든 브래지어를 앞가슴에 대 보며 혼자 미소를 짓고 있는 중년 부인의 사진. 그런 사진이 있는가 하면, 지나가던 어린애가 던져 주는 은화를 모자로 받으며 좋아서 헤벌쭉 웃고 있는 병신 같은 늙은이의 사진도 있고, 푸줏간에 매달아 놓은 소의 큼직한 뒷다리를 반달형의 섬뜩한 칼로 뭉텅 도려 내고 있는 처녀의 매끈한 얼굴과 그 곁에 매달려 있는 황소의 흉측한 대가리를 대조시킨 사진 등……. 한 장 한 장 넘겨 가는데,

"야! 이거 멋있다!"

영일이가 유난히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 이거 크리스마스지요? 미국 크리스마스지요?"

좋아서 못 견디었다.

영일이의 말마따나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미국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려한 실내 장식이나, 파티 혹은 교회의 성가대 같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개집이었다. 현관 옆에 있는 개집을 정면으로 크게 찍은 것이었다. 큼직한 삼각형의 집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오각형을 이루고 있었으나, 지붕이 삐쭉하게 위로 솟아 있기 때문에 얼른 보기에 삼각형이었다. 곁에 조그만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져 있고, 지붕에는 십자가가 꽂혀 있었다. 그리고 은종이 금종이로 여러 가지 장식이 되어 있는데, 그 장식들이 현관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불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잘 장식된 집 속에 늙은 개가 한 마리 떡 엎드려서 밖으로 주둥이를 쑥 내밀고 졸고 있는 것이었다. 그 위로 방금 떨어지기 시작하는 듯 솜눈이 한두 송이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팔자 좋구나."

나는 절로 이런 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영일이도 킥 웃으며,

"기분 좋겠지요?" 하였다.

그러고 있는데, 아내가 행주치마에 손을 닦으며 들어오더니,

"무슨 책이 그렇게 재미있어요?"

책을 들여다본다.

영일이가 얼른 사진 속의 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이 개 기분 좋겠지? 미국 크리스마스야."

"미국은 개도 저렇게 호강하는구나."

아내는 이렇게 중얼거리더니,

"참 여보, 종두 오빠 집 지었대요."

엉뚱한 소리를 꺼낸다.

"종두가 집을 지어? 먹고살기도 뭐하다더니……."

"그러니까 말이 집이지, 뭐 보잘거야 있겠어요."

"오빠가 왔었소?"

"아니요, 언니가 왔었어요, 어제."

아내는 힉 웃더니,

"개집보다도 못하지만 한번 놀러 오라잖아요."
하였다.

"그래?"

나도 힉 웃었다.

"한번 가 봅시다. 집까지 지었다는데……."

"어디래?"

"미아리요. 약도를 그려 놓고 갔어요."

그러자 영일이가 발딱 일어나더니,

"약도 여기 있어요, 아버지."

책상 서랍을 연다.

"그래그래, 한번 가 보도록 하지."

"야, 신난다! 언제 가요? 아버지."

"내일 일요일이니까, 내일 갈까?"

"그래요, 그래요."

좋아서 못 견딘다. 아내도 빙그레 웃는다.

나는 성미가 이상해서 친척집에 가길 싫어한다. 친척집뿐 아니라 대체로 남의 집에 가길 싫어한다. 남의 집엘 가면 어쩐지 멋쩍고 피로한 것이다. 이런 점을 아내는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사촌 오빠이긴 하지만, 서울에서 하나밖에 자기네 친척을 꼭 한 번 방문했을 뿐이니, 그럴 만도 한 일이다. 사람이 무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 성미인 내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거렸으니, 좋을 수밖에 없다.

아내는 방구석에 놓인 걸레를 가서 집어 들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방바닥을 곧장 문질러 대면서,

"오늘 저녁엔 무슨 국을 끓여 드릴까요? 벌써 아욱이 나왔더군요. 당신 좋아하시는 아욱국이나 끓일까요?"

수다를 떤다.

그러자,

"나 아욱국 싫어. 맛없어!"

영일이가 내질러 버린다.

 

이튿날, 아침 나절엔 구름이 끼어 후텁지근하더니, 오후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고, 우리가 집을 나섰을 때는 햇빛이 알맞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새로 산 흰 운동화를 신은 영일이는 좋아서 버스 안에서도 곧장 운동화를 흔들어 댔다.

미아리 시장 입구에서 버스를 내렸을 때는 햇볕이 제법 쨍쨍해져 있었다.

"엄마, 이 길로 가는 거지?"

"그래."

"이 길로 가면 엄마 친구 아짐마네 집도 있잖아?"

영일이는 씽긋 웃고는 까딱까딱 앞장을 선다.

"당신 약도 가져왔소?"

"예."

그러나, 아직 약도를 꺼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내는 이 근처의 지리에 비교적 밝았다. 영일이의 말마따나 친구 아줌마네 집에 이 근처에 있어서 자주 왕래를 하고 있었다. 나는 호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어슬렁어슬렁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참, 성냥을 한 통 사야죠. 그래도 새로 집을 지었다는데, 그냥 갈 수가 있어요?"

아내는 나를 보고 히죽 웃는다.

"그래그래, 좋도록 해요."

길은 차츰 좁아 드는 것 같긴 했으나, 이리 구불 저리 구불 좀처럼 끝이 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점점 오르막이 되어 갔다. 영일이는 여전히 흰 운동화를 가볍게 내딛고 있었으나, 나는 어느 덧 무르팍이 뻐근해 왔다. 아내도 약간 숨이 찬 듯했다.

"아직 멀었소?"

그러자 아내는 힉 웃으며 말했다.

"아직 멀었어요. 아직 절반도 못 왔어요."

"아니, 어딘데 그렇게 먼 거야?"

"저 산비탈을 넘어야 돼요."

"저 비탈을?"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슬그머니 화가 치밀었다.

"약돌 좀 꺼내 보란 말이야."

"보나마나 뻔한 걸요, 뭐. 아이 오빠도 참, 어쩌자고 이런 데다 자릴 잡았을까……. 글쎄, 언니가 지겔 지고 여기까지 넘어와서 물을 길어 간다잖아요."

오늘 재수 없게 되었구나 싶었지만 화를 낼 일도 아니고 해서,

"어디서 좀 쉬어 가지."
하고 마침 길가에 있는 빵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만두를 한 개 먹었고, 영일이와 아내는 찐빵과 도넛을 먹었다. 좀 앉았다 일어나니 한결 다리가 가벼웠다.

길은 차츰 더 가팔라졌다. 그리고 햇볕이 이마에 맞바로 와 닿았다. 나는 웃옷을 벗어 어깨에 걸쳤다. 옷을 어깨에 걸치고 건들건들 걸어 올라가면서, 나는 무슨 새로운 사실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길 아래쪽을 돌아보기도 하고, 사방을 둘러보기도 했다. 지대가 차츰 높아질수록 집들의 꼬락서니가 점점 을씨년스러워져 가는 것이었다. 어디에서나 뻔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나는 조금씩 조금씩 못해져 가는 그 변모의 차도가 퍽 재미있게 생각되어 집들의 지붕이랄지 대문의 생김새, 그리고 문패 같은 것을 슬슬 살펴보며, 별로 고된 줄을 모르고 걸었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니, 이젠 집은 끊어지고 벌건 산비탈만이 눈앞으로 다가들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보기 힘든 가파른 비탈이었다. 그 비탈에 그어진 위태위태한 길을 조심조심 디디고 올라가며,

"아니, 이 길을 물지겔 지고 넘어 다닌단 말이야?"

아내를 돌아보았다.

"예, 저쪽엔 수돗물이 없다나요."

아내는 또 힉 하고 웃는다.

영일이는 어느 새 올라갔는지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야아, 경치 좋다!"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바람이 부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좀 시원한 것 같았다. 경치야 뭐 별로 좋을 게 없었다.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았다. 아내는 핸드백을 열고 종이 쪽지를 꺼냈다. 이제 약도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아내는 꺼내 든 약도와 지형을 번갈아 바라보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어디, 이리 줘 봐요."

나는 아내에게서 약도라는 그 종이 쪽지를 받아들자,

"이게 약도야?"

허어,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걸 약도라고 그려 준 사람이나, 그걸 약도라고 간직해 온 사람이나 다 똑같다고 생각하며, 오늘 괜한 고생을 하는 거나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그 일대를 두루 살펴보고 난 나는 약도가 이렇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도대체 집들이 어떻게 어수선하게 깔려 있는지……. 길이라는 것도 분명하게 내세울 만한 것이 없고, 집과 집 사이의 공지가 그대로 길 구실을 하고 있는 형편이며, 남의 집 마당을 길이라고 지나다니는 그런 판국이었다.

공중 촬영이라도 하기 전에는 이 일대를 약도에 담아서 처음 길인 사람에게 집을 찾도록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노릇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그냥 되돌아간다는 것도 말이 아니어서, 약도에 그려져 있는 '우리 집'이라는 표지의 위치를 대충 짐작해 가며 더듬어 내려가 보는 수밖에 없었다.

남의 집 마당을 지나, 어디선지 쿠리쿠리한 냄새가 나는 좁은 길을 내려가며 나는 불현듯 산다는 게 도대체 뭔지…… 이런 우울한 생각이 들어,

"음―."

신음 소리 비슷한 소리를 입 밖으로 냈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아내가,

"산보 나온 셈 칩시다, 여보." 하였다.

내 기분이 언짢아진 줄을 아는 모양이다.

"산보할 데가 없어서 이런 쿠리쿠리한 냄새나는 곳을 찾아온단 말이야?"

그러나 나는 아내를 돌아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아이, 냄새 지독해."

영일이는 코를 거머쥐고 덩달아 야단이다.

잠시 후, 우리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수월하게 집을 찾을 수가 있었다. 안종두 씨네 집이 어디냐고 묻기도 하며 대충 짐작으로 더듬어 나가는데,

"저기 저 집 아닌지 모르겠어요."

아내가 별안간 저쪽 비탈을 가리켰다.

그쪽 비탈은 솔밭이었다. 자잘한 소나무들이 어설프게나마 솔밭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솔밭 근처 조금 외떨어진 곳에 집이 하나 보였다. 집이라기보다도 조그마한 움막이었다.

"아니, 저 집이란 말이야?"

"그런 것 같애요. 솔밭 근처라고 하는 것 같더군요."

"솔밭 근처라면 자린 잘 잡았군."

내가 히죽 웃자, 아내도 힉 따라 웃었다.

집이 가까워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모두 걸음을 멈추었다. 대체로 처음 남의 집을 찾아갈 때, 막상 당도해 보면 예상했던 것보다 못한 것이 상례지만, 이 집이 사실이라면 이건 좀 너무하다 싶었다.

아내의 얼굴을 힐끗 돌아보니 불안한 빛이 역력했다. 이 집이 아니기를 바라는 그런 표정이었다.

"물어 볼까?"

아내는 표정이 약간 이지러질 뿐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러고 있는데 방 문으로 아이가 하나 나타났다. 그 계집아이를 보자 아내는,

"맞군요."

힘없이 말했다. 그리고,

"오빠도 참……."
하고 입맛을 다셨다.

계집아이는 우리를 보자 퀭한 두 눈을 말똥거리더니, 씩 웃으며 뽀르르 도로 방 안으로 기어들어가 버렸다.

"맞는 거야?"

"맞아요. 쟤가 옥희잖아요. 애들도 많은데, 이런 데서 어떻게 하려고…… 오빠도 참……."

그러자 영일이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아버지!"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응?"

"꼭 미국 개집 같죠?"

"뭐?"

"책에 있는 미국 개집 말이에요. 꼭 그 개집같이 생겼잖아요. 삐쭉하고……."

나는 얼른 두 눈을 부릅뜨며,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냐!"
하고 나무랐다.

그러나 이미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삼각형인 것이었다. 물론 이 집도 정확하게 말하면 사진에 있는 그 개집처럼 오각형이었다. 지면에서 약 세 뼘가량 흙으로 벽을 쌓아서 그 위에 삐쭉하게 지붕을 얹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얼른 보면 이것도 역시 그 개집처럼 삼각형으로 보였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지붕이었다. 천만조각과 시꺼먼 유지(기름종이) 조각으로 이어 맞추다가 모자라서 그랬는지, 혹은 빗물이 새서 그랬는지, 군데군데 레이션(군대의 비상 식량) 박스 조각으로 땜질을 해 놓았다. 꼭 시골 가난한 아낙네의 치마를 연상케 했다. 그리고 레이션 박스 조각에는 아직도 글자들이 그대로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흠."

나는 괜히 고개를 자꾸 끄덕거렸다. 알제리의 소년이 머리에 떠올랐던 것이다. 불란서 문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는 깡통을 들고 담벼락에 기대서 있는, 영일이가 '야, 이 자식 깡통하고 꽃하고 들고 있다' 하던 그 소년 말이다.

그러고 있는데, 부스스 기어 나온 것은 처남 종두였다. 그리고 처남댁도 기어 나왔다. 옥희라는 애와 또 몇몇 꼬마들도 얼굴을 내밀었다.

"어, 어서 오게, 어서 오게. 그렇잖아도 한 번 올 줄 알았지."

종두는 누런 이빠디(이빨)를 드러내며 반겼다.

처남댁도,

"아유, 어서 오세요. 참 오래간만이군요. 우린 이런 데서 삽니다."
하고 웃었다. 그 두 눈 구석에는 어느덧 물기가 약간 어려 있었다.

나는 좀 멋쩍었으나,

"왜요, 참 좋습니다. 공기도 좋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사방을 한번 둘러보았다.

그러자 종두는 헛헛허 웃고 나서,

"이래 봬도 내가 이 집을 짓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나? 손바닥이 다 부르텄지. 그리고 자본이 자그마치 삼천 원이나 들었단 말씀이야, 삼천 원……."
하였다.

우리는 모두 웃었다. 우리가 웃자, 아이들도 덩달아 좋아서 야단이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니, 밖에서 생각하던 것보다는 괜찮았다. 꽤 넓은 방에 반들반들한 장판이 깔려 있었고, 벽에는 조그마한 창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햇빛이 솔솔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지면에서 두어 뼘가량 파 들어가서 방을 만들었기 때문에 천장도 그다지 낮지는 않았다. 천장이래야 물론 네모 반듯하게 해서 찬장지를 바른 것이 아니고 그냥 지붕을 올린 그대로니까, 양쪽에서 한가운데로 곳간처럼 치솟아 올라 있었다. 아무튼 꽤 키가 큰 나지만, 한가운데서는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되었다.

"이만하면 훌륭하군."

내가 말하자,

"훌륭해? 헛헛허……."

종두는 또 껄껄껄 웃었다. 처남댁도 아랫목에 방석을 내놓으며,

"자, 이리 앉으세요. 밖에서 보는 것보단 그래도 낫지요?"

킥 웃었다.

"이게 뭐야?"

영일이가 별안간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우리는 모두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 맨 구석 쪽이었다. 햇볕에 있다가 방에 들어왔기 때문에 나는 얼른 보질 못했는데, 거기에 무엇인지 조막만 한 것들이 소복하게 모여서 고물거리고 있었다. 병아리들이었다.

"병아리 아냐."

내가 말하자, 종두와 처남댁은 빙그레 웃었다. 그러자 옥희가 빠끔한 코를 쳐들며,

"병아리가 아니야. 아저씨, 꿩 새끼야."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눈이 퀭하긴 했으나 퍽 귀여웠다.

"꿩 새끼야?"

나는 그 쪽으로 바싹 다가가 보았다. 아내도 다가왔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병아리로밖에 보이지가 않았다. 병아리와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색깔도 같고, 모양도 같고, 심지어 뺙뺙뺙 우는 소리까지 같았다.

"병아리와 똑 같군."
하자 종두가 웃으며 곁으로 다가왔다.

"자세히 보면 좀 다르지. 봐, 털이 좀 병아리보단 까칠까칠해 보이잖아. 그리고 주둥이도 좀 뾰족하고……."

그렇게 말하니 그런가 싶을 따름이었다.

"꿩을 기를 생각인가?"

나는 퍽 호기심이 갔다.

"그렇지. 꿩을 칠 생각으로 여기에다 자릴 잡은 거야. 나중에 보면 알겠지만, 바깥에 있는 저 솔밭이 전부 우리 꿩밭이 되는 거야."

"꿩밭이 되다니, 그럼 저 솔밭을 전부 산단 말인가?"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그렇지. 그러나 당장엔 무슨 재주로 사겠나. 다 장래의 원대한 계획이지. 우선은 그냥 공짜로 이용해 먹느 거야."

"공짜로 이용해 먹다니, 어떻게?"

"솔밭에다 꿩을 놓아서 기른단 그 말이야."

"놓아서? 놓아 주면 다 날아가 버릴 게 아닌가."

"헛헛허……. 그러니까 아이디어라는 게 귀중한 거지. 새로운 아이디어는 일종의 자본이란 말이야."

종두는 제법 득의연해 가지고 음, 하며 한쪽 방구석에 걸려 있는 물건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트럼펫이었다. 고물 장수가 걷어 갈 법한 낡은 트럼펫이 하나 덜렁 걸려 있었다. 그 트럼펫을 보자 아내는,

"저것이 아직 남아 있군요, 오빠."
하며 히히 웃었다.

언젠가 아내에게서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종두는 중학교 때 밴드부원으로 트럼펫을 불었는데, 없는 처지에 기어이 자기 트럼펫을 하나 마련했다는 것이다. 여름 방학이 되면 꼭 그 트럼펫을 가지고 시골에 있는 아내네 집, 그러니까 종두로서는 백부네 집에 놀러 오곤 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그 때 초등학교 상급반이었는데, 사촌 오빠인 종두가 오면 좋아서 늘 그 뒤를 따라다녔다는 것이다. 오빠가 좋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보다도 트럼펫이 신기해서 그렇게 따라다닌 것 같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종두가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트럼펫으로 '아리랑'이니, '양산도'니, 혹은 '홍도야 우지 마라' 같은 것을 멋들어지게 불고 있는데, 아버지가 오셨다는 것이다. 종두는 백부가 온 줄도 모르고 고개를 흔들어 가면서 신명을 떨어 댔다 한다. 그러자 완고한 시골 노인인 아버지는,

"저 녀석이 나중에 곡마단을 따라다닐려고 저러나……."
하시며 쯧쯧쯧…… 혀를 차시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내의 머리빡에 큰 꿀밤을 한 개 먹이면서,

"이년아! 너도 나중에 곡마단 따라다니고 싶으냐? 썩 집으로 못 들어갈까?"

호령이시더라는 것이다.

그런 종두였으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엘 갔다 오더니, 요즘 세상에는 영어가 제일이라고, 영어를 배워야 출세를 한다고, 미군 부대 하우스보이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미군 부대에 꽤 오래 붙어 있어서 영어는 제법 지껄이게 되었으나, 이렇다 할 뾰족한 수도 보지 못하고, 결국 무슨 사고를 저질러서 쫓겨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제법 지껄이게 된 영어나 한번 팔아먹어 볼까 했으나, 이미 그런 것만으로는 쉽사리 밥을 먹을 수가 없는 세상이 되어 있어서, 하는 수 없이 시작한 것이 외래품 장사였다 한다. 한때는 그것으로 꽤 재미를 보았는데, 그만 오지게 들통이 나서 홀랑 털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끼니조차 끓이기가 힘들게 되었다더니…… 이젠 엉뚱하게 이런 곳에 자리를 잡고, 꿩을 기르겠다고 나선 것이다.

"아니, 트럼펫이 꿩 기르는 데 무슨 소용이 있나?"

"기가 막히는 아이디어지. 아마, 자네 같은 사람은 글이나 쓰람 잘 쓸까, 이런 아이디어는 백 년 가도 못 생각해 낼걸. 헛헛허……."

그러고 있는데 상이 들어왔다. 언제 나갔는지 처남댁이 소주 한 병을 사 가지고 온 모양이었다. 술상을 가운데 놓고 종두와 나는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했다. 아내는 처남댁에게 사 가지고 온 성냥과 과자를 내놓으며 웃고 있었다. 과자는 안주로 우리 상에도 조금 올랐다.

소주라 취기가 빨랐다. 종두는 눈 언저리가 발그레 물들며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 동안 살아오면서 느낀 철학은 말이야, 무슨 철학인고 하니,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철학이란 말이야."

"그렇지."

"내가 취체(규칙, 법령, 명령 따위를 지키도록 통제함)에 걸려서 장사 밑천까지 몽땅 날려 버린 것도 함께 장사하던 사람의 배신 때문이었단 말이야. 죽이고 싶더군. 미군 부대에서 쫓겨난 것도 가깝게 지내던 친구의 밀고 때문이었지. 사람은 누구나 믿을 수 없단 말이야."

"그렇지."

나는 대고 그렇지, 그렇지 했다. 술기가 제법 혼혼하게 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동물을 믿고 살아기기로 했지. 동물은 시키는 대로 한단 말이야. 절대로 안심이란 말이야."

"알겠어. 그런데 꿩과 트럼펫은?"

"그건 간단한 아이디어야. 트럼펫이 아니라도 상관 없어. 마침 내게 트럼펫이 있고, 옛날에 내가 그것을 불었기 때문에 그걸로 하는 거야. 무엇이든지 한 가지 악기를 가지고 새끼 때부터 길을 들인단 말이야. 어떻게 하는가 하면 모이를 줄 때, 꼭 일정한 소리를 내거든. 일정한 곡을 분단 말이야. 그렇게 길을 들여 나가면 언제 어디서나 그 소리만 나면 모여들게 되거든. 절대로 배신을 하지 않지. 절대로, 헛헛허……."

"그래서 놓아 기른단 말인가?"

"그렇지. 새끼 때부터 그렇게 인공으로 길러 놓으면 혼자서는 먼 데로 날아갈 생각을 않게 되지. 그리고 나팔만 불면 모여든단 말이야. 그런 식으로 하면 수백 마리, 수천 마리도 문제가 없지. 어떤가, 아이디어가?"

"그럴듯한데. 순전한 창안인가?"

"헛헛허……."

대답은 않고, 몇 해를 안 닦은 것 같은 누런 앞니를 드러내며 웃고 나서,

"그렇게 되면 솔밭뿐 아니라, 이 근처 일대를 불하받아서 꿩의 왕국을 만든단 말이야. 꿩의 왕국을……. 장래의 원대한 계획이지." 하는 것이었다.

"좋지."

그러나 나는 속으로 우습기만 했다. 그의 이빠디가 너무 누렇기 때문에 그런지, 허황한 이야기로밖에 들리지가 않았다.

그러자 과자를 씹고 있던 옥희가 퀭한 두 눈에 반짝 웃음을 띠며,

"아버지! 그럼 우리 부자 되지?"
하였다. 모두 웃었다. 2홉짜리였으나 별 안주도 없이 마셔서 그런지 바닥이 났을 때는 종두는 두 눈이 벌겋게 상기되어 누르스름한 눈곱까지 빚어 내고 있었다. 나도 꽤 얼큰했다.

상이 나가자, 종두는 벌겋게 상기된 눈을 껌벅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여보! 모이 줄 시간 됐지? 모이 줄 시간."

약간 혀 꼬부라진 소리를 했다.

"아직 멀었어요.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는걸요."

"한 시간? 괜찮아 지금 줘도. 빨리 주면 빨리 크지. 자아, 모이 가져와, 모이."

종두는 벽에 걸린 트럼펫을 벗겨 들었다.

"주책이야, 주책. 아이 참!"

처남댁은 혀를 탁 찼다.

종두가 트럼펫을 물자, 영일이는 신기한 듯 두 눈을 말똥거리며 바싹 다가앉는다.

종두는 트럼펫을 문 채 벌건 눈으로 나를 보며 히죽 웃었다.

"자아, 들어 보게. 모이 주는 노랠세, 모이 주는 노래."

그리고 빠―ㅇ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무슨 노래일까, 꽤 호기심이 갔다.

빠―ㅇ 빠빵 빠―ㅇ 빠빵 빠응 빠응 빵빠빠―ㅇ.

'아리랑'이었다. '아리랑' 곡조로 모이 주는 훈련을 시키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가 미군 부대에 오래 다녔기 때문에 필시 재즈나 맘보 같은 곡이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대중가요 나부랭이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이었다.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트럼펫이 워낙 낡아서 소리가 부드럽지는 않았으나, 옛날 불던 가락이 있어서 그런 대로 들을 만하게 넘어갔다.

빠―ㅇ 빠빠응 빠응 빠응빠응빠―ㅇ 빠빵빵.

꿩 새끼들이 일제히 주둥이를 쳐들고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미물들의 반응이 어찌나 신기한지 고개를 끄덕거리며 감탄했다. 아내도 곁으로 와서 그것을 보고,

"참 별일도 다 있네."

혀를 내둘렀다.

우리가 그렇게 신기해하자, 종두는 신명이 나는 듯 더욱 힘껏 가락을 뽑아 댔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는 것이었다. 방 안이 온통 떠나갈 듯 왕왕거렸다.

"아이 여보! 그만 해요. 손님이 왔는데 그게 뭐예요."

처남댁은 시간이 덜 돼서 그런지 모이를 갖다 줄 생각은 하지도 않고 눈을 허옇게 흘기기만 했다. 그러나 종두는 벌겋게 상기된 두 눈에 아까보다도 훨씬 굵은 눈고을 물고 여전히 신명을 돋우어 댔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빙그레 웃음을 떠올렸다. 나는 저 눈곱이나 좀 닦고 불었으면 싶었으나 그저,

"헛헛허……."

큰소리로 웃었다. 서글펐다.

아내도 민망스러운지,

"오빠, 이제 그만 해요."
하고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나는 직접 무슨 일을 당했을 때는 감동도 잘 하고 충격도 많이 받으나, 그 감동이나 충격이 오래 가질 못하고 어지간한 일이면 곧 잊어 버리는 그런 희미한 성미이다.

그래서 매사가 흐리멍덩하다.

그러나 종두네 집에 다녀온 뒤로 제법 한동안 그에 대한 일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정말 그의 말마따나 그런 식으로 꿩을 기를 수가 있을까? 솔밭에 그냥 꿩들을 내놓아도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그래서, 하다못해 그 레이션 박스 조각으로 더덕더덕 땜질을 한 삼각형의 집이나마 면하게 될 것인가? 누런 눈곱이 비어져 나오는 줄도 모르고 신명이 나서 나팔을 불어 대던 그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날 우리가 떠나올 때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언덕 위까지 따라나와서,

"또 놀러 와 주겠나?"
하고 쓸쓸하게 웃던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어찌된 셈인지 그만 그 후로 한 번도 찾아가 보질 못하고 여름을 넘기고 말았다. 그리고 엄벙덤벙 가을도 깊어 갔다. 그의 일도 어느덧 머리에서 희미해져 갔다.

가을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대는 어느 날 오후, 나는 별 볼일도 없이 광화문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바람이 스산하긴 했으나,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마음이 한가해서 좋았다. 건들건들 걸어가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어깨를 툭 치며,

"어디 가는 거야?" 하였다.

P군이었다. 베레모를 납작하게 눌러쓰고 카메라를 걸치고 있었다.

"그 베레모 좋군."

나는 웃었다.

"베레모고 뭐고, 소재가 없어 야단인데……."

"어디 또 출품하나?"

"이번에 멀리 한번 보내 보려고 하는데, 마땅한 소재가 있어야지."

"멀리라니? 미국인가?"

"아냐, 파리에서 콘테스트가 있거든. 거기 한번 보내 보려고 그러는데……."

"그래서 카메랄 메고 다니는군."

"아침부터 이렇고 돌아다니고 있지, 핫핫하……."

"열심히 해야지."

"이러지 마."

P군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가지고, 푸우 연기를 허공으로 내뿜으며,

"한국적인 멋있는 소재가 없을까?" 한다.

한국적인 소재란 말에 피뜩 나는 종두네 집이 머리에 떠올랐다. 틀림없이 좋은 소재가 될 것 같았다.

"좋은 게 있지."

내가 씽긋 웃자,

"뭔데? 응? 뭔데?"

귀가 번쩍하는 모양이었다.

"소잴 그렇게 쉽게 제공할 수 있나, 한턱 단단히 내야지."

"좋은 소재면 한턱뿐이겠나. 뭔데? 응?"

"삼각형의 집이야, 삼각형."

"삼각형의 집이라니……. 판잣집이란 말인가?"

"그렇지. 머리 좋은데?"

"이러지 마."

"헛헛허…… 일종의 판잣집인데 말이야, 지붕이 아주 그럴듯하거든."

"……."

"지붕에 레이션 박스로 땜질을 해 놓았는데 말이지, 아직도 글자가 선명하게 남아 있단 말이야."

"어딘가?"

"소재가 되겠지?"

"좋은데."

"미아리야."

"당장 좀 가 보세."

P군은 내 사정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벌써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 손을 들고 있었다.

택시가 스르르 미끄러지기 시작하자, 나는 뒤로 편안하게 몸을 눕혔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서 슬그머니 후회를 했다. 이럴 일이 아니었는데 싶었다. 그 후로 한 번도 찾아가 보질 않고, 돌연 이렇게 남을 데리고 그 을씨년스러운 꼬락서니를 사진으로 찍으려고 찾아가다니, 실례인 것 같았다. 기껏 소재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던가 싶으니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이미 택시는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찾아가 보는 것이 안 찾아가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 새끼 꿩들은 이미 장끼 혹은 까투리가 되었을 텐데. 정말 솔밭에 놓아 기르고 있을까? 나는 애써 생각을 돌리려고 했다.

택시에서 내리자, 우선 소주를 큰 놈으로 한 병 샀다. 그리고 과자도 두두룩하게 샀다. 그래야만 좀 덜 미안할 것 같았던 것이다.

"아니, 뭐 할려고 그렇게 사는 거야?"

"친척 되는 집이야."

"그래?"

P군은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짓더니,

"하난 이리 줘."

과자 봉지를 받아들었다.

지난번에 와 봤는데도 길이 어쩐지 생소하기만 했다. 대충 짐작으로 자꾸 가 보는 수밖에 없었다. 차츰 오르막이 되더니 저만치 산비탈이 보였다. 그리고 빵집도 나타났다. 나는 빵집에 들어가 좀 쉬어 갈까 하고 P군을 보니, P군은 별로 피로한 기색이 없었다.

"저 산비탈 너머야."

"좋아."

예사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베레모를 납작하게 눌러쓴 얼굴이 여간 깐깐하게 보이는 게 아니었다. 나도 빵집에 들어갈 생각을 그만 두고 아랫배에 힘을 주며 뚜벅뚜벅 계속 걸음을 옮겼다.

산비탈은 스산한 바람 때문인지 어설프기만 했다. 길바닥에 굵은 모래가 흘러내려 자칫하면 발이 쭉쭉 미끄러졌다.

그러나 P군은,

"아라비아에라도 온 것 같은 기분인데."
하고 웃었다.

뻐근한 다리를 이끌고 비탈길을 올라가고 있는데, 어디선지 아우성치는 것 같은 시끌작한 소리가 가물가물 들려왔다. 그 시끌작한 소리에 섞여 분명히 나팔 소리도 들려오고 있었다. 언덕 너머였다. 트럼펫 소리에 틀림없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일까?

나는 허겁지겁 언덕마루로 달려 올라갔다. 언덕마루에 올라선 나는 그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되고 말았다. 참으로 뜻밖의 광경이 눈 아래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영문인가 하고 뒤따라 올라온 P군도 입을 딱 벌렸다.

집들을 부숴 내고 있는 중이었다. 허옇게 사람들이 들끓으며 아우성을 치고 있는 가운데, 집들이 마구 부서지고 있었다. 무허가 판잣집 철거인 모양이었다. 저 건너 솔밭 쪽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을씨년스러운 종두네 삼각형의 집도 벌써 납작해져 버린 듯 잘 눈에 띄지가 않았다. 트럼펫 소리만이 처량하게 흘러오고 있었다. 물론 '아리랑'이었다. 꿩들을 부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말 그 동안에 꿩들을 솔밭에 놓아기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수라장이 벌어져 있는데, 꿩들을 불러 모아서 어떻게 할 셈이지. 그러나 정신없이 그저 빵빵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빠―ㅇ 빠빵 빠―ㅇ 빠빵 빠응빠응 빵빠빠―ㅇ.

빠―ㅇ 빠빠응 빠응빠응빠응 빠―ㅇ 빠빵빵.

…….

나는 콧잔등이 시큰해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그리고 속이 와들와들 떨려 오기 시작했다. 한참 속이 와들와들 떨리더니 그만 깔딱깔딱 하고 딸꾹질로 변하고 말았다. 나는 덜렁 소주병을 든 채 멀뚱하게 서서 종두네 집이 있던 쪽을 바라보며 깔딱깔딱 대고 딸꾹질을 하기만 했다.

P군은 좋은 소재라도 얻었다는 듯이 카메라를 꺼내 이리저리 열심히 핀트를 맞추고 있었다.

 

해마다 나는 남들보다 일찍 오버를 입는다. 유달리 추위를 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감기도 또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그래서 아내는 나를 보고 순 밥통이라고 한다. 그런지도 모른다.

어떤 친구는 아직 내의도 안 입고 다니는데, 나는 벌써 오버를 꺼내 걸쳤다. 그리고 하루는 교정 볼 일이 좀 있어서 인쇄소엘 나갔다. 인쇄소의 교정실에 앉아서 교정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신문 나부랭이를 손에 닿는 대로 아무거나 한 장 집어 들었다.

손에 잡힌 것은 <복음주보>라는 기독교 계통에서 발행하는 2면짜리 주간 신문이었다. 별 흥미가 없었으나, 그냥 들고 큼직한 제목만 건성으로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뒷면 상단에 크게 자리잡고 있는 교회 사진에 눈이 멎었다. 사진이 아니라, 새로 건립할 교회의 입체 투시도였다. 그것을 보는 순간 어찌 된 까닭인지 나는 뜯겨 버린 종두네 그 삼각형의 집이 머리에 떠올랐다. 교회의 지붕이 뾰족하게 위로 솟구쳐 있기 때문에 얼른 보면 삼각형의 집처럼 보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사진 곁에 있는 제목을 보자, 어떤 예측이 번쩍 머리를 스쳤다. '가난한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하고 큰 고딕 활자로 박아 놓고, 그 곁에 부제로 '미아리에 새 교회 건립 확실시'라고 해 놓은 것이다. 나는 얼른 그 기사를 읽어 보았다. 예측이 딱 들어맞았다. 무허가 판잣집을 철거해 낸 대지 천오백 평을 불하받기로 거의 확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새 교회를 세워서 변두리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골고루 베풀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나는 별안간 웬일인지 콧구멍이 간질간질해 왔다. 그리고,

"에취!"

재채기가 나오는 것이었다.

"어취! 어취! 어취!……."

되게 또 감기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이해와 감상>

'삼각의 집'은 도회지 서민의 삶에서 발견되는 부조리한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미국의 커다란 개집과도 흡사한 종두의 무허가 판잣집은 철거되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은혜를 베풀기 위한 교회의 땅이 된다. 가난한 자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말은 갈 곳 없는 가난한 종두의 집을 없앤 뒤에 이루어지는 것이니 어쩐지 너무나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종두의 삶은 곧 가난한 도회지 서민의 삶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가난하지만 나름의 꿈을 가지고 그것을 믿으며 살아가려고 하는 삶의 모습을 종두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종두의 삶은 마치 '미국의 개집'과도 같은 그의 집의 모습 때문에 우스꽝스럽게 보여지기도 한다. 그래서 서술자의 어린 아들은 그 집을 개집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종두의 그런 삶은 어떤 비난의 대상이 아닌 서민이 겪게 되는 현실적인 삶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가난한 사람을 위한다며 이루어지는 수많은 억압과 폭력의 모습을 종두와 그의 집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